최봉직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출생 | |
사망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직업 | 독립운동가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최봉직은 1896년 6월 27일 황해도 벽성군 금산면 추정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봉영화(奉永華)·정만기(鄭萬基)·이명수(李明洙)·이인규(李麟珪)·김석만(金錫萬)·최병한(崔丙漢)[1] 등과 함께 해주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몇달간 옥고를 치렀다.
1921년 음력 2월 정순경의 권유를 받고, 김기한과 만나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황해도지단의 설립과 군자금모집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동년 8월 16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대구로 이주하여 조용히 지내다 1961년 7월 2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최봉직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1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921년 음력 2월 정순경의 권유를 받고, 김기한과 만나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황해도지단의 설립과 군자금모집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동년 8월 16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대구로 이주하여 조용히 지내다 1961년 7월 2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최봉직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1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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