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경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정순경(鄭順敬)
생몰
황해도 해주군 해주읍 서영정
사망지
매장지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독립장

목차
1. 개요2. 생애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6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정순경은 1894년 12월 25일 황해도 해주군 해주읍 서영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신문기자로, 3.1 운동 소식을 해주읍에 보도하는 한편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발행한 독립신문을 비밀리에 해주로 반입, 배포했다. 그러던 1920년 1월 해주 출신이며 의병에 참여했다가 만주로 건너갔던 김기한을 만나 그로부터 독립운동을 함께할 동지를 모으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에 따라 변동식(邊東植)·최봉직·봉영화(奉永華)·김구영·변동환(邊東煥) 등과 함께 만주 유하현 삼원보에 본부를 두고 있는 대한독립단의 황해도 지단을 설립했다.

그는 황해도 지단의 조직 책임을 위임받고 본부로부터 비밀리에 송부되어온 독립신문·격문·포고문·취지문 등을 단원에게 배부하는 한편, 각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했다. 그러나 1921년 8월, 독립단조직이 일본경찰에 발각됨으로써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으며, 온갖 고문과 악형을 받은 끝에 해주지방법원에서 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0월 3일 평양복심법원에 공소를 제기했지만 기각되어 평양형무소에서 복역했다. 고문으로 건강이 악화되자 병보석으로 출옥한 뒤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리다 1942년 5월 10일 경성부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정순경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67년 그의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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