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인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분류
1. 개요 [편집]
문자 그대로 '천하의 사람'이란 의미. 구체적으로는 일본 전국시대의 인물을 일컫는 데 주로 사용되는 단어이다. 주로 진짜 천하를 제패했거나, 사실상 천하를 제패한 거나 다름없는 위업을 세운 인물, 천하의 요지를 장악한 것이나 다름없는 인물에게 쓰인다. 특히 민간에선 이들을 (최초의/누구누구 이전의/시대를 바꿔놓은)천하인이라고 띄워 주며 과도하게 추앙하는 경향이 있다.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나, 보통 전국시대의 전국 3영걸은 확실히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이 셋을 포함해서 아래 기술된 5명의 인물을 주로 천하인으로 거론하는데, 마지막 1명을 제외하곤 전부 자신의 후계자 대에서 박살이 났다. 어쩌면 춘추오패의 일본 버전일지도...
창천항로 등 일본 삼국지 매체나 시대물 등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천하인,' '패업' 같은 단어가 들어가면 사실상 일본 미디어 확정.혹은 그 영향을 받은 미디어 엄밀히 말해 이런 단어는 일본 고유의 정서가 강하게 배어 있어서 중국 등 외국의 사례에 대입하기에는 약간 호환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창천항로 등 일본 삼국지 매체나 시대물 등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천하인,' '패업' 같은 단어가 들어가면 사실상 일본 미디어 확정.
2. 천하인이라 불리는 다이묘들 [편집]
- 미요시 나가요시: 셋츠, 카와치의 다이묘. 간레이 호소카와 하루모토의 가신이었으나 곧 격렬히 대립하여 그를 깨뜨렸으며 오우미로 쇼군이 도망쳐 공석이 된 무로마치 막부를 잠시 차지하였다. 이후 쇼군 가문을 교토로 불러들였으나 곧 대립하여 자신이 직접 아시카가 요시테루를 깨뜨리고 막부를 차지, 사실상 기능을 정지시키며 새로운 무가 정권을 세웠다. 5년 정도 지나 막부와는 화친했으나 막부와 거의 동등한 권한을 쥐게 되었으며 최대의 항구도시 사카이를 점거하여 적극적으로 이용하였고 자주 문화 활동에 참여하여 나가요시의 실세와 명망은 높아져갔다. 전성기에는 10개국이 넘는 영지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일본의 부를 움켜쥔, 말그대로 천하인과 가까운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전성기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병사하였다. 장남이 자신보다 먼저 사망했기에 후계는 동생의 아들인 미요시 요시츠구가 이었다.
- 오다 노부나가: 오와리, 미노, 오우미의 다이묘. 오와리의 슈고다이(守護代)였던 오다 가문을 급속도로 부흥시켜 도카이도와 주부 대개를 차지하였다. 이후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옹립하여 상락, 그를 쇼군으로 만들어 주었으며 일본의 중앙인 기나이 또한 그의 손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상업을 중시하여 자신의 영지 곳곳의 상업을 진흥시킨 데다 상락 이후의 수많은 역경을 뚫고 오히려 공세로 나갔으며 동서를 가리지 않고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쇼군을 쫒아내어 막부를 차지하여 기능을 정지시켰기에 가히 천하인이라 할 만하였다. 이후 서쪽의 군사를 지원하기 위해 혼노지에 거처하였으나 가신의 손에 살해당하였다. 장남도 당시에 사망하였기에 후계자가 공표되지 않은 오다 가문은 사분오열되었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 노부나가의 가신. 미천한 출신이었으나 노부나가에게 중용받아 후에는 주고쿠 공략을 일임받는 군단장까지 올라서게 되었다. 노부나가 사후 급히 군사를 회군시켜 노부나가의 원수를 물리쳤으며 시바타 카츠이에, 도쿠가와 이에야스 같은 정적들을 무력으로 제압해 사실상 오다 가문을 흡수하게 되었다. 이윽고 서일본과 동일본을 자신의 휘하로 끌여들이는데 성공하여 명실상부한 천하인이 되었다. 천하를 통일한 이후 해외 진출을 노리며 조선을 침략하였으며 고타이로(五大老)라는 아슬아슬한 정치체계를 취하였고 아들이 태어나자 후계자로 지명된 조카를 살해하는 등 실정으로 판단될 행동을 계속하였다. 이후 사망하였으며 후계는 아들인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이었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미카와의 다이묘이자 에도 막부의 창시자. 마츠다이라 가문에서 태어나 이마가와 가문에서 인질생활을 했으나 요시모토 사후 노부나가를 따라 그를 보좌해 주었다. 히데요시가 오다 가문을 차지하자 그와 대립하였으며 간토로 영지를 전봉당하자 착실히 힘을 길렀다. 히데요시 사후 도요토미가 분열하자 도요토미를 지지하는 무장들과 전쟁을 벌여 승리하였으며 사실상 새로운 천하인이 되었다. 이후 관위를 얻고 에도 막부를 창시하여 새로운 일본의 시작을 알렸다. 후계는 삼남인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이었으며 에도 막부는 약 260년 동안 일본을 통치해 나갔다. 이렇기에 센고쿠 시대 최후의 승자로도 평가받는다.
3. 판도를 산산이 깨부순 후계자들 [편집]
- 오우치 요시타카: 당주에 취임한 다음 유능함을 여지없이 발휘하여 오우치의 판도를 늘려갔으나 아마고 원정이 그의 모든 것을 뒤틀어버렸다. 원정의 패전이후 본인은 문약해져 문치파의 인사를 중용하여 영지를 통치해 나갔다. 이는 무단파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문치파와 무단파의 대립으로 이어졌다. 얼마 안가 요시타카는 스에 하루카타의 배반으로 사망하였다. 이후 오우치 가문은 하루카타가 새로운 당주를 옹립하여 존속되었으나 얼마 가지않아 모리 모토나리와의 전투에서 하루카타가 사망, 오우치 가문은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곧 모토나리에 의해 멸망하였다.
- 미요시 요시츠구: 당주에 취임한 요시츠구는 무로마치 막부와 쇼군을 탐탁지않게 여겼다. 결국 요시츠구는 에이로쿠의 변을 일으켜 쇼군을 살해하고 차기 쇼군을 임명하지 않는 극단적인 정책을 실행하게 된다. 이 정책에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불쾌감을 보였고 결국 기나이 미요시 가문의 중신인 미요시 산닌슈와 히사히데 부자는 격렬히 대립하게 되었다. 요시츠구는 이들을 중재하지 못하고 산닌슈파에 소속하게 되었으며 히사히데를 미요시 가문에서 몰아내는 것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러나 시노하라 나가후사를 위시로 한 산닌슈는 새로운 쇼군을 임명하고 요시츠구를 경시하게 되어 요시츠구는 히사히데에게 투신하였다. 히사히데 세력으로 넘어간 요시츠구는 상락하는 오다 노부나가 세력에게 투신하였고 산닌슈는 노부나가에 의해 기나이에서 쫒겨나 기나이 미요시 가문은 멸망했다. 이후 아와 미요시 가문 또한 쇠퇴해갔으며 시간이 지나 결국 멸망하였다.
- 도요토미 히데요리: 당주로 취임할 당시 매우 어린 나이였고 가신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였다. 이윽고 문치파와 무단파의 대립이 일어났고 이시다 미츠나리는 가토 기요마사에게 암살기도까지 받을 정도로 대립은 극단으로 치닫았다. 이후 문치파와 무단파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도 격돌하게 되었고 무단파의 무장이 가세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승리하게 되면서 도요토미의 영향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결국 오사카의 진에서 이에야스의 공격을 받게 되었고 전쟁에서 지면서 도요토미 가문은 멸망하였다. 물론 여기에는 아버지 히데요시의 무모했던 조선과의 전쟁으로 도요토미 측근들의 세력약화도 크게 작용했다.
보면 알겠지만 하나같이 내분 때문에 멸망했다. 조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는 역사일 것이다. '천하인' 개념을 엄청 띄우는 역사물들이 종종 습관적으로 그에 대비되어 중국, 한반도식 대의명분 관념을 무쓸모한 "허례허식에 찌든 꼰대관념"인양 묘사해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에서도 이런 취향 드러내는 작품들 은근히 많고 사실 그런 내분 한 방에 패권이 박살나는 걸 막는게 결국 대의와 명분이라는 것이 큰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2]
라이선스를 별도로 명시하지 않은 문서는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문서의 기여자는 역사 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접두어의 N: - 나무위키 사용자, R: - 리그베다 위키의 사용자를 뜻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나무위키에서 동일한 문서의 역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