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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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효준의 감독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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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진효준(陳孝準)
생년월일
국적
신장
186cm, 87kg
출신학교
포지션
포워드
선수
고려대학교 (1976~1979)
삼성전자 (1979~1987)
지도자
태평양화학 코치 (1987~1991)
삼성전자 코치 (1991~1996)
명지대학교 감독 (1996~2000)
대한민국 유니버시아드 대표팀 감독 (1999)
여수 골드뱅크 클리커스/코리아텐더 푸르미 감독 (2000~2002)
장쑤 난강 드래곤즈(중국) 감독 (2002~2003)
고려대학교 감독 (2004~2008)
해설위원
KBS SKY 스포츠 (2002~2003)
링크
목차
1. 개요2. 선수 시절3. 지도자 시절4. 퇴임 이후5. 관련 자료6. 관련 문서

1. 개요 [편집]

대한민국의 농구인.

2. 선수 시절 [편집]

1955년에 태어나 명지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에 진학해 박한 감독 밑에서 농구를 배웠고, 이후 삼성전자 농구단에 입단하여 포워드로 활약하여 후배들인 신동찬안준호, 박인규, 임정명을 시작으로 김현준, 김진 등과 함께 뛰며 1984/85 농구대잔치에서 한번 트로피를 들었다.

3. 지도자 시절 [편집]

은퇴 후 1987년부터 태평양화학 여자농구단 코치로서 데뷔해 김동욱과 신동파 감독을 보좌했고, 1991년 삼성전자 농구단으로 옮겨 은사 김인건 감독을 보좌하다가 1996년부터 진성호 감독의 후임으로 명지대학교 감독을 맡아 박재일을 발굴한 바 있고, 1999 팔마 유니버시아드 때 한국 대표팀 감독도 맡았다.

2000년에는 여수 골드뱅크 클리커스 감독으로 KBL에 데뷔하여 약체의 코리아텐더 푸르미를 2001-2002 시즌에 26승을 올렸으나 KBL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고, 모기업의 자금난까지 겹치면서 시즌 종료 후 물러났다. 그리하여 2002-2003 시즌은 삼성전자 시절 후배인 이상윤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았다.

경질 후 중국 CBA 팀 장쑤 난강 드래곤즈의 감독을 1년여 간 맡다가 2003/04 시즌 애니콜 프로농구 때 몇달 간 KBS SKY 스포츠 해설위원도 맡았으나, 2004년 1월 이충희 감독의 경질로 공석이 된 모교 고려대 농구부의 감독이 되었는데, 이는 농구부 역사상 최초의 공개모집 감독이었다. 취임 때부터 명가의 부활을 선언한 후 이민형노기석 두 코치의 보조를 받으며 전년도 하승진 등 스카우트 실패를 인정하며 학부모들을 설득했고, 오랜 팀 내부 갈등도 해소해 2007년 연고전 승리로 이끈 바 있다.

하지만 2007 시즌이 끝난 후 어느 학부모로부터 농구부 측이 자식의 스카우트 댓가로 4,000만원을 수수한 사실이 고발되면서 그는 검찰 조사를 받았고, 이 과정에서 타 학부모들로부터 총 1억원을 수수한 게 더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이것 때문인지 한승수 전 총장대리는 사표를 쓰지 말라느니, 이기수 총장은 사표를 쓰라느니 하며 밀고 당기기를 하다가 시간이 지나 학교측이 사표를 종용했고, 2008년 2월 26일부로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반면 진효준 본인은 2008년 9월 7일자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대학 스포츠계의 잘못된 풍토가 낳은 희생자라고 주장했다.

결국 그는 1심에서 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 및 집행유예 3년, 추징금 1억원을 내라고 선고받았고, 이에 항소에 상고까지 했으나 2008년 12월 19일부로 대법원으로부터 원심이 확정됐다.

4. 퇴임 이후 [편집]

위와 같은 문제점으로 지도자로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서 야인의 길을 갔는데, KBL 유소년 캠프와 KBL OB 올스타 게임에서 근황이 보이기도 했다.

5. 관련 자료 [편집]

6. 관련 문서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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