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찬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신동찬의 감독 경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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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농구감독 | |
이름 | 신동찬(申東燦) |
생년월일 | |
국적 | |
출신학교 | |
포지션 | |
신체사이즈 | 190cm |
실업시절 | 삼성전자 (1979~1987) |
지도자 | 경복고등학교 코치 (1994~1996) 금호생명 펠컨스 감독 (2001~2003) 경복고등학교 감독 (2000~2002) 홍콩 윈링 감독 (2003) 인도네시아 여자국가대표팀 감독 (2005) |
행정 | KBL 경기위원회 KBL 기술위원회 |
해설위원 | |
1. 소개 [편집]
대한민국의 농구인. 前 프로농구 선수 및 감독.
2. 선수시절 [편집]
2.1. 고교-대학 시절 [편집]
2.2. 실업 시절 [편집]
실업농구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 삼성과 현대의 라이벌전은 언제나 초만원 관중 속에 치러졌다. 이때 현대에 박수교가 주전 가드로 팀을 이끌었다면 삼성에는 장신 가드 신동찬이 있었다.
실업농구 삼성에서 가드를 맡았으면서 80년대 아마추어 삼성의 전성기를 이끈 주역이었다. 당시 동기인 박인규에 이어 후배인 김현준과 김진과 함께했다.
1987년 박인규과 함께 1987 농구대잔치 코리안리그 우승 이후 정들었던 코트를 떠나게 된다.
1982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이충희와 신선우 그리고 박종천과 함께 금메달을 함께했다.
실업농구 삼성에서 가드를 맡았으면서 80년대 아마추어 삼성의 전성기를 이끈 주역이었다. 당시 동기인 박인규에 이어 후배인 김현준과 김진과 함께했다.
1987년 박인규과 함께 1987 농구대잔치 코리안리그 우승 이후 정들었던 코트를 떠나게 된다.
1982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이충희와 신선우 그리고 박종천과 함께 금메달을 함께했다.
3. 지도자 시절 [편집]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여자프로농구 금호생명에서 감독을 맡았다.
하지만, 성적부진으로 인해 자진사퇴를 했다.
이후 홍콩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고 2003년에는 홍콩의 윈링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성적부진으로 인해 자진사퇴를 했다.
이후 홍콩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고 2003년에는 홍콩의 윈링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4. 방송해설위원 시절 [편집]
경인방송과 MBC EPSN 해설위원을 맡았다.
5. 여담 [편집]
인도네시아에서의 힘든 생활을 뒤로 하고 당찬 포부를 밝힌 히딩크 감독의 목표였는데 이루지 못했다.
2009년 홍콩에서 우승 이후 다시 찾으면서 홍콩여자농구의 히딩크로 돌아왔다.
2014-2015 KBL 올스타 게임에서 프로농구 올스타전 이벤트 경기에서 1982 뉴델리 아시안게임 전설로 참가를 했다.
2009년 홍콩에서 우승 이후 다시 찾으면서 홍콩여자농구의 히딩크로 돌아왔다.
2014-2015 KBL 올스타 게임에서 프로농구 올스타전 이벤트 경기에서 1982 뉴델리 아시안게임 전설로 참가를 했다.
6. 관련 문서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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