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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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2. 일생3. 작품 활동4. 여담


1. 개요 [편집]

대한민국소설가, 언론인, 독립운동가, 영문학자이다. 호는 여심(餘心), 여심생(餘心生). 대표작으로는 사랑 손님과 어머니, 인력거꾼 등이 있다.

2. 일생 [편집]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개신교 목사 주공삼의 차남으로 태어나 '요섭(요셉)'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의 형은 최초의 근대시 <불놀이>로 유명한 시인 주요한이다. 동생은 극작가인 주영섭이다.

1919년 평양에서 3.1 운동에 참가하였다. 1919년 5월 평양 숭덕학교 학생들과 비밀리에 독립신문사를 만들고 등사판 "독립신문"을 발간했다. 이 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7월 21일 징역 5월을 선고 받고 평양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그 뒤 중국 상하이의 후장 대학(호강 대학)[1]에 재학중이던 1921년 12월 23일, 상하이 삼일예배당에서 재상해한인학생회가 개최되었을 때 대한독립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최후의 일인까지 싸워야 한다는 취지로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연설을 하였다.

1926년 11월 상하이의 한인유학생 단체들이 모두 해체되고 통일된 단체인 상해한인학우회가 창립되었을 때 운동부의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27년 3월 개최된 상해한인청년회 창립총회에서도 집행위원에 선출되는 등 유학생/청년 단체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교육학 석사를 마친 뒤 1931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신동아 주간과 부장으로 활동했다. 그 후 중국 푸렌대학 교수, 코리아타임스 주필, 경희대학교 교수, 국제 펜클럽 한국 본부 위원장, 코리안리퍼블릭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3. 작품 활동 [편집]

19살 때 단편 데뷔작인 "추운 밤"을 발표하는데, 성냥팔이 소녀의 영향을 받았지만 꿈도 희망도 없는 현실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33세 때 사랑 손님과 어머니를 발표하며 일약 대스타가 되었다.

사랑 손님과 어머니의 작가로만 기억되지만, 사회주의 계열 문학회인 카프 쪽 활동을 많이 했다. 인력거꾼이 주요섭의 대표적인 카프 계열 소설이다. 하지만 사랑 손님과 어머니가 발표될 무렵에는 카프와 거리를 둔 듯하다. 그 때문에 광복 이후 사회주의에 극도로 민감하고 부정적이던 시절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외의 작품들로 "개밥", "봉천역 식당", "아네모네의 마담", "세 죽음" 등이 있다.

4. 여담 [편집]

  • 주요한의 일제 말기 노골적인 친일 행적 때문에 주요섭까지 친일 아니냐고 도매금으로 오해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1] 피천득, 현진건 등도 다녔던 대학교인데 1950년대에 다른 대학으로 합병되었다. 중국의 고유 명사를 만다린어 발음에 가깝에 표기하는지라 후장 대학이라고 많이 알려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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