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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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주미대사관의 공관장으로, 장관급이다.[1] 정식 명칭은 주 미합중국 대한민국 특명전권대사이다.
대한민국 외교관들 중 요직중의 요직으로 초강대국인 미국에 파견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장관급 이상의 의전[2]을 받는다. 정치인이나 경제인, 학자 혹은 대통령 측근이 임명되어 가는 특임 외교관들이 가는 경우도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한미동맹과 대미외교의 중요성이 남다른만큼 그냥 전문 외교관 출신이 가는 경우가 더 많다. 이렇게 중요한 자리이기에 정통 외교관들이나 실세 관료들의 커리어패스를 쌓는 주요 코스가 되기도 한다. 당시 몇몇 관계자 말로는 '꼭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주미대사 자체가 위상과 인기가 높은 자리이니 외무부장관과 주미대사 둘 중에 고르라면 주미대사를 택한다'는 말이 떠돌 정도였다. 사실 완전히 루머는 아닌 것이 외무부장관을 역임하고 이후에 주미대사를 한 사람이 한승주 등 매우 많으며 심지어 국무총리까지 올라갔음에도 나중에 미국으로 가는 사람도 이홍구, 한덕수 등 두 명[3]이나 됐다. 과거 권위주의에 물든 한국 사회에서 높은 지위에 있다가 낮은 지위로 가는 일이 없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주미대사 자리가 결코 장관보다 못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여담으로 과거 주미대사관에 영어 할 줄 아는 사람은 대사밖에 없다는 말이 돌 정도로 대사관에 이런저런 배경으로 온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대사관에 근무하면 나랏돈으로 해외에서 생활하는 장점이 있고, 미국 내 인사나 실력자들과 접촉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이 본국에서 정치인이 오면 자신을 주미대사관에 꽂아준 사람이 미국 상, 하원의원이나 국무장관 같은 주요 각료 등과 사진 찍을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서만 움직이고, 정작 할 일은 소홀히 한다는 평가가 많았다. [4]
대한민국 외교관들 중 요직중의 요직으로 초강대국인 미국에 파견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장관급 이상의 의전[2]을 받는다. 정치인이나 경제인, 학자 혹은 대통령 측근이 임명되어 가는 특임 외교관들이 가는 경우도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한미동맹과 대미외교의 중요성이 남다른만큼 그냥 전문 외교관 출신이 가는 경우가 더 많다. 이렇게 중요한 자리이기에 정통 외교관들이나 실세 관료들의 커리어패스를 쌓는 주요 코스가 되기도 한다. 당시 몇몇 관계자 말로는 '꼭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주미대사 자체가 위상과 인기가 높은 자리이니 외무부장관과 주미대사 둘 중에 고르라면 주미대사를 택한다'는 말이 떠돌 정도였다. 사실 완전히 루머는 아닌 것이 외무부장관을 역임하고 이후에 주미대사를 한 사람이 한승주 등 매우 많으며 심지어 국무총리까지 올라갔음에도 나중에 미국으로 가는 사람도 이홍구, 한덕수 등 두 명[3]이나 됐다. 과거 권위주의에 물든 한국 사회에서 높은 지위에 있다가 낮은 지위로 가는 일이 없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주미대사 자리가 결코 장관보다 못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여담으로 과거 주미대사관에 영어 할 줄 아는 사람은 대사밖에 없다는 말이 돌 정도로 대사관에 이런저런 배경으로 온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대사관에 근무하면 나랏돈으로 해외에서 생활하는 장점이 있고, 미국 내 인사나 실력자들과 접촉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이 본국에서 정치인이 오면 자신을 주미대사관에 꽂아준 사람이 미국 상, 하원의원이나 국무장관 같은 주요 각료 등과 사진 찍을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서만 움직이고, 정작 할 일은 소홀히 한다는 평가가 많았다. [4]
2. 명단 [편집]
정부 | 대수 | 이름 | 임기 |
초대 | 장면 (張勉) | 1949년 02월 02일 ~ 1951년 02월 00일 | |
2대 | 양유찬 (梁裕燦) | 1951년 04월 30일 ~ 1960년 04월 29일 | |
3대 | 정일권 (丁一權) | 1960년 06월 08일 ~ 1960년 10월 00일 | |
4대 | 장이욱 (張利郁) | 1960년 12월 05일 ~ 1961년 06월 00일 | |
5대 | 정일권 (丁一權) | 1961년 06월 30일 ~ 1963년 04월 00일 | |
6대 | 김정렬 (金貞烈) | 1963년 06월 14일 ~ 1964년 10월 00일 | |
7대 | 김현철 (金顯哲) | 1964년 12월 15일 ~ 1967년 10월 00일 | |
8대 | 김동조 (金東祚) | 1967년 11월 09일 ~ 1973년 12월 00일 | |
9대 | 함병춘 (咸秉春) | 1974년 02월 01일 ~ 1977년 04월 00일 | |
10대 | 김용식 (金溶植) | 1977년 05월 13일 ~ 1981년 06월 00일 | |
11대 | 류병현 (柳炳賢) | 1981년 09월 21일 ~ 1985년 11월 00일 | |
12대 | 김경원 (金瓊元) | 1985년 11월 09일 ~ 1988년 04월 00일 | |
13대 | 박동진 (朴東鎭) | 1988년 07월 05일 ~ 1991년 03월 00일 | |
14대 | 현홍주 (玄鴻柱) | 1991년 04월 11일 ~ 1993년 04월 00일 | |
15대 | 한승수 (韓昇洙) | 1993년 06월 23일 ~ 1994년 12월 23일 | |
16대 | 박건우 (朴健雨) | 1995년 01월 17일 ~ 1998년 04월 27일 | |
17대 | 이홍구 (李洪九) | 1998년 04월 28일 ~ 2000년 08월 01일 | |
18대 | 양성철 (梁性喆) | 2000년 09월 05일 ~ 2003년 04월 16일 | |
19대 | 한승주 (韓昇洲) | 2003년 04월 20일 ~ 2005년 02월 15일 | |
20대 | 홍석현 (洪錫炫) | 2005년 02월 22일 ~ 2005년 09월 23일 | |
21대 | 이태식 (李泰植) | 2005년 10월 14일 ~ 2009년 02월 27일 | |
22대 | 한덕수 (韓悳洙) | 2009년 03월 09일 ~ 2012년 02월 17일 | |
23대 | 최영진 (崔英鎭) | 2012년 03월 08일 ~ 2013년 05월 28일 | |
24대 | 안호영 (安豪榮) | 2013년 06월 05일 ~ 2017년 10월 20일 | |
25대 | 조윤제 (趙潤濟) | 2017년 11월 14일 ~ 2019년 10월 20일 | |
26대 | 이수혁 (李秀赫) | 2019년 10월 25일 ~ 현재 |
[1] 반면에 주한미국대사는 인사에 따라 다르다. 우리나라처럼 대상.급수를 획일화하기는 힘들지만, 현직 해리 해리스 대사는 1급국가인 호주대사에서 한국대사로 변경된 것으로 볼 때 최상위 대사급이라고 할 수 있다.[2] 이는 주변 3강국과 UN 대사들도 마찬가지지만, 미국의 위상이 다를 수 밖에 없기에 스포트라이트를 더 받는다.[3] 물론 대사를 거쳐 장관, 총리나 유력 정치인의 테크를 밟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대표적으로 초대 대사인 장면, 국회의장과 국무총리를 모두 역임한 정일권, 기타 김정렬, 한승수 등.[4] 심지어 이런 약속을 잡기 위해 겨우 5분 만나 사진 한 장 찍을 일정을 만들려고 무리수를 두다가 국익에 해가 될 약속도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정도로 주미대사관 근무는 매력적인 자리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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