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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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편집]
2. 활동 내역 [편집]
1918년 경상남도 김해군 좌부면 부원리(현 김해시 부원동)#에서 태어났다. 1940년 경성고등상업학교[1] 졸업 후 도일하여 1943년 일본 규슈제국대학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일본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여 일본 후생성 보험국과 내무성 산하 교토부청의 지방과에서 근무했다.
광복, 정부수립 이후 외무공무원이 되었으며 1951년 외무부(현 외교부) 정무국장을 거쳐 외무부 차관을 지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때 수석대표로 참석했으며 1965년 말부터 1967년까지 주일대사를 지냈다. 그리고 1967년부터 1973년까지 주미대사를 지냈다. 1973년부터 1975년까지 외무부장관을 지냈다. 외무부장관 임기 중이던 1974년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이 일어나자 주 대한민국 일본 대사인 우시로꾸 도라오에게 해당 사건과 관련 일본의 책임이 일정 정도 있으므로 일본에 대한 강경한 자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이후 1981년부터 변호사로도 활동했다.[2]
미국의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현대사》(창작과 비평사 출판사. 2001년)라는 그의 책에서, 김동조를 '일제 강점기 때 일본에 협력한 한국인 중 한 명으로 기술했다.
광복, 정부수립 이후 외무공무원이 되었으며 1951년 외무부(현 외교부) 정무국장을 거쳐 외무부 차관을 지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때 수석대표로 참석했으며 1965년 말부터 1967년까지 주일대사를 지냈다. 그리고 1967년부터 1973년까지 주미대사를 지냈다. 1973년부터 1975년까지 외무부장관을 지냈다. 외무부장관 임기 중이던 1974년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이 일어나자 주 대한민국 일본 대사인 우시로꾸 도라오에게 해당 사건과 관련 일본의 책임이 일정 정도 있으므로 일본에 대한 강경한 자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이후 1981년부터 변호사로도 활동했다.[2]
미국의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현대사》(창작과 비평사 출판사. 2001년)라는 그의 책에서, 김동조를 '일제 강점기 때 일본에 협력한 한국인 중 한 명으로 기술했다.
3. 가족 관계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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