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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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송의 황족
한공헌왕(漢恭憲王)
趙元佐 | 조원좌
공헌(恭憲)
한왕(漢王)추봉
조(趙)
이름
원좌(元佐)
유길(惟吉)
생몰
965년 ~ 102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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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황
모후
형제
소성태자(昭成太子) 조원희(趙元僖)
진종(眞宗) 조항(趙恒)
상공정왕(商恭靖王) 조원분(趙元份)
월문혜왕(越文惠王) 조원걸(趙元傑)
진공의왕(鎭恭懿王) 조원악(趙元偓)
초공혜왕(楚恭惠王) 조원칭(趙元偁)
주공숙왕(周恭肅王) 조원엄(趙元儼)
숭왕(崇王) 조원억(趙元億)

목차
1. 개요2. 생애3. 후손

1. 개요 [편집]

중국 북송시대의 황족으로 2대 황제인 태종 조광의의 장남이다. 자는 유길(惟吉).

2. 생애 [편집]

조원좌는 태종 조광의와 원덕황후(元德皇后) 이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처음 이름은 조덕숭(趙德崇)이었다가 동궁으로 옮겨살면서 초왕(楚王)으로 봉해지고 원좌(元佐)로 개명하였다.

태종의 재위기에는 조원좌의 숙부인 진왕(秦王) 조정미가 역모를 꾸미려고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물론 조정미가 진짜로 역모를 꾸밀 마음은 없었지만 조정미는 태종에 의해 부릉군왕으로 강등되었다. 조원좌는 이 사태를 알고 태종에게 숙부인 조정미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간청하였으나 태종은 조원좌의 간청을 무시하였고 조정미는 결국 옹희(雍熙) 원년(984년)에 쓸쓸함 속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조정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조원좌는 슬픔 속에 결국 미쳐버려 옹희 2년(985년)에는 급기야 자신의 궁궐에 불을 놓는 사건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태종의 귀에도 들어가 조원좌는 결국 폐서인되었다. 997년에 태종이 세상을 떠나고, 새롭게 황제로 즉위한 조원좌의 동생인 진종은 형의 처지를 동정하며 그의 작위를 다시 복원시켜주었다.

조원좌는 조카인 인종의 재위기인 천성(天聖) 5년(1027년)에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후 시호는 공헌(恭憲)이며 사후 작위는 제왕(齊王)→노왕(潞王)→위왕(魏王)을 거쳐 한왕(漢王)이 되었다.

3. 후손 [편집]

조원좌에게는 3명의 아들로 조윤승(趙允升), 조윤언(趙尹言), 조윤성(趙允成)이 있었다. 많은 태종의 후손들이 정강의 변금나라로 끌려갔지만 조원좌의 후손들은 이를 면할 수 있었다.

남송 때 재상을 지냈던 조여우는 조원좌의 7대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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