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복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개요 [편집]
파일:external/c2down.cyworld.co.kr/download?fid=64224c8d9a9ea0e85f784ca2363a49cd&name=%C1%A6%B8%F1%20%BE%F8%C0%BD.jpg
문무백관들이 종묘사직에 제사지낼 때, 왕이나 신하가 천자에게 나아갈 때, 조회에 참여 할때, 혹은 경축일에 입던의복에서 후대로 갈수록 점차 입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시작은 이미 주대 유물에서 보여지는것에서 기원을 찾을수있으며 나라마다 특색이 있으나 공통적으로 규와 폐슬 패옥을 착용하였다. 이는 제왕이 입던 면복과 함깨 동양의 최대 예복이었다. 조복을 입을때 쓰는 모자를 조선에서는 금관이라고 불렀다.
문무백관들이 종묘사직에 제사지낼 때, 왕이나 신하가 천자에게 나아갈 때, 조회에 참여 할때, 혹은 경축일에 입던의복에서 후대로 갈수록 점차 입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시작은 이미 주대 유물에서 보여지는것에서 기원을 찾을수있으며 나라마다 특색이 있으나 공통적으로 규와 폐슬 패옥을 착용하였다. 이는 제왕이 입던 면복과 함깨 동양의 최대 예복이었다. 조복을 입을때 쓰는 모자를 조선에서는 금관이라고 불렀다.
1.1. 춘추전국 [편집]
1.2. 한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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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현도군에서 매년 조복을 받아갔다는 기록으로 볼때 고구려의 조복도 같은 양식이라 생각된다.
고구려가 현도군에서 매년 조복을 받아갔다는 기록으로 볼때 고구려의 조복도 같은 양식이라 생각된다.
1.3. 당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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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객사도. 당고종의 아들 장회태자 현의 무덤에 그려진 것으로 장회태자의 장례식에 참석한 조정 신료와 이국 사신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당대 객사도. 당고종의 아들 장회태자 현의 무덤에 그려진 것으로 장회태자의 장례식에 참석한 조정 신료와 이국 사신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2. 고려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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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경우 문헌에 세부 자료가 자료가 남아 있지 않으나(송의 영향을 받았지만), 불화등의 그림을 통해 복원
고려의 경우 문헌에 세부 자료가 자료가 남아 있지 않으나(송의 영향을 받았지만), 불화등의 그림을 통해 복원
3. 송 [편집]
4. 명과 조선 [편집]
파일:external/c2down.cyworld.co.kr/download?fid=642241b84448b5b8d32541bab74468d4&name=2.jpg
명과 조선, 엄밀히 말하면 본 그림은 조복이 아닌 제복이다 하지만 색을 제외한 양식은 같다, 조복의 경우는 삼이 적색이다.
파일:external/pds.skyedaily.com/1394684637WOOipcpIhVlFQPxqBGIpnVhQZOAmM.jpg
금관과 조복 차림의 흥선대원군
윗 그림의 조선 조복들은 후기 복식으로 조선초기의 조복은 명나라와 유사하다[1]
명과 조선, 엄밀히 말하면 본 그림은 조복이 아닌 제복이다 하지만 색을 제외한 양식은 같다, 조복의 경우는 삼이 적색이다.
파일:external/pds.skyedaily.com/1394684637WOOipcpIhVlFQPxqBGIpnVhQZOAmM.jpg
금관과 조복 차림의 흥선대원군
윗 그림의 조선 조복들은 후기 복식으로 조선초기의 조복은 명나라와 유사하다[1]
5. 일본? [편집]
파일:external/c2down.cyworld.co.kr/download?fid=642241b84448b5b8615441bab744a2d4&name=DSCF0582121.jpg
일본의 경우 조복에 대한 자료가 좀 애매한데, 나라 시절 중국에서 전해진 복식에 기원을 두고 있다.
기록에 남은 양식에서 보듯이 상의의 모양세와 패옥등은 당나라의 영향[2]을 받았으며 바지의 모양새는 백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여러 양식이 혼합되어 있는 상태에다 독자적으로 예법과 의식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해, 점차 쇠퇴하여 후대로 갈수록 조복이 조잡하고 단순해졌으며 헤이안 시대 중반쯤가면 호우코(布袴)와 소쿠타이(束帯)가 조복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당에서 온사람이 이를 보고 "당나라의 일상복을 입고 예의를 갖춘 조복이라고 한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사신에게는 소쿠타이가 아무리 높게 봐줘봤자 당나라의 관복인 단령처럼 보였을 것이다.
일본의 경우 조복에 대한 자료가 좀 애매한데, 나라 시절 중국에서 전해진 복식에 기원을 두고 있다.
기록에 남은 양식에서 보듯이 상의의 모양세와 패옥등은 당나라의 영향[2]을 받았으며 바지의 모양새는 백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여러 양식이 혼합되어 있는 상태에다 독자적으로 예법과 의식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해, 점차 쇠퇴하여 후대로 갈수록 조복이 조잡하고 단순해졌으며 헤이안 시대 중반쯤가면 호우코(布袴)와 소쿠타이(束帯)가 조복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당에서 온사람이 이를 보고 "당나라의 일상복을 입고 예의를 갖춘 조복이라고 한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사신에게는 소쿠타이가 아무리 높게 봐줘봤자 당나라의 관복인 단령처럼 보였을 것이다.
6. 같이보기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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