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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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정점시는 1897년 9월 7일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 대평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중순 이원화(李源華)·전하선(全夏善)·성만영·김덕명(金德明)·구재범(具在範)·권무용 등이 독립만세시위를 계획할 때 참여했고, 1919년 3월 21일 오후 1시 초계리 장터에서 4천여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했다.
시위 군중은 초계우편소에서 인근 일본군의 통신망을 파괴하고 경찰주재소로 행진해 주재소를 포위하고 투석과 몽둥이로 유리창을 깨부수는 등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일본 경찰이 공포를 발사하며 제지하자, 시위군중은 발포한 일본 경찰 2명을 붙잡아 구타하였다. 그러나 합천 경찰서에서 응원 출동한 일본 경찰이 현지에 도착, 이곳 경찰과 합세하여 무차별 사격을 감행하고 주동자를 검거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그도 이때 체포되었으며, 이해 8월 8일 부산(釜山)지방법원 진주(晋州)지청에서 소위 소요 혐의로 징역 1년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합천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37년 7월 12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정점시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시위 군중은 초계우편소에서 인근 일본군의 통신망을 파괴하고 경찰주재소로 행진해 주재소를 포위하고 투석과 몽둥이로 유리창을 깨부수는 등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일본 경찰이 공포를 발사하며 제지하자, 시위군중은 발포한 일본 경찰 2명을 붙잡아 구타하였다. 그러나 합천 경찰서에서 응원 출동한 일본 경찰이 현지에 도착, 이곳 경찰과 합세하여 무차별 사격을 감행하고 주동자를 검거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그도 이때 체포되었으며, 이해 8월 8일 부산(釜山)지방법원 진주(晋州)지청에서 소위 소요 혐의로 징역 1년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합천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37년 7월 12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정점시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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