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만영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성만영(成萬永)
생몰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 초계리
사망지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목차
1. 개요2. 생애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성만영은 1875년 9월 23일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 초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전국 각지에서 3.1 운동이 전개되자 합천군 초계면에서도 시위를 벌이기로 결심하고 무릉리에 사는 유지 이원화(李源華)·전하선(全夏善)·김덕명(金德明) 등과 함께 3월 21일 초계리 장날을 이용하여 거사키로 약속하고 모든 준비를 서둘렀다. 이들은 장날인 3월 21일 당일 장터에 모인 4천여 명의 군중들에게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배부하고 독립만세를 선창하여 시위를 주도하고 초계우편소(草溪郵便所)와 주재소를 습격하여 투석과 곤봉으로 기물을 파괴하고 일경 2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이 일로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19년 8월 8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요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 합천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36년 8월 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성만영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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