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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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정병하(鄭秉夏, 1849년 ~ 1896년)는 조선 말기의 개화파 대신이다.
2. 생애 [편집]
김옥균의 영향을 받아 개화파 정치인이 되었으며, 1883년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사관으로 임명되었다[2]. 김홍집 내각에 들어가 1894년 갑오개혁, 1895년 을미개혁에 참여했다.
갑오개혁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친일 성향으로 많이 기울었으며, 을미사변 당시 일본 낭인들이 침입한 것을 알면서도 아무 일이 없다고 거짓 보고를 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을미사변 이후 명성황후의 폐비를 주장하였으며 단발령 때에는 고종이 직접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직접 고종의 머리카락을 잘랐다.
1896년 아관파천 당일 고종은 정병하를 역적으로 분류했고, 개화파들을 체포하는데 이때 사망하였다. 경무청 앞에서 김홍집과 함께 순검들에게 참살됐는 설과 길에서 백성들에게 김홍집과 돌 맞아 죽었다는 설이 있다.
그의 동료였던 유길준, 조희연, 장박, 우범선[3]는 일본으로 망명했다.
갑오개혁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친일 성향으로 많이 기울었으며, 을미사변 당시 일본 낭인들이 침입한 것을 알면서도 아무 일이 없다고 거짓 보고를 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을미사변 이후 명성황후의 폐비를 주장하였으며 단발령 때에는 고종이 직접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직접 고종의 머리카락을 잘랐다.
1896년 아관파천 당일 고종은 정병하를 역적으로 분류했고, 개화파들을 체포하는데 이때 사망하였다. 경무청 앞에서 김홍집과 함께 순검들에게 참살됐는 설과 길에서 백성들에게 김홍집과 돌 맞아 죽었다는 설이 있다.
그의 동료였던 유길준, 조희연, 장박, 우범선[3]는 일본으로 망명했다.
3. 같이 보기 [편집]
[1] 아관파천 문서 참조.[2] 이로 보아 1884년 퍼시벌 로웰과 함께 화계사로 놀러갔던 '정 사관'도 이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 당시 화계사에서 로웰이 찍은 사진이 남아있으며, 여기서는 사관 이시렴(사진 우측 둘째)과 최경석(우측 첫째)은 식별되나 정병하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당시 로웰과 동행했던 인원은 최경석, 이시렴, 정 사관, 윤치호와 그의 비서격 역할을 한 사서기(司書記), 기생 4명, 그 외 놀이패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사진 속 인물이 총 4명이고 모두 사대부의 복식을 하고 있는 점을 보면, 인물의 중요도로 유추했을 경우 사진 나머지 인물들은 왼쪽부터 윤치호와 정병하로 추정된다. 중앙은 로웰이 마음에 들어한 기생이다.[3] 도주하였지만 고종이 고영근을 보내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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