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 간섭 이후 일본이 약간 주춤하게 되고 개화파와 친러파(김홍집,
이완용)의 연합 내각이 등장하고,
왕후 민씨의 세력이 친러파와 결탁을 하여 일본 세력 제거를 시도하기도 한다. 이에 일본은 왕후 민씨를 시해하고(=
을미사변) 친일 성향이 강했던
조희연과
유길준이 참여하여 4차 김홍집 내각을 조직하고 을미개혁을 추진한다.
갑오개혁도 그렇지만 일본의 침략 행위인
을미사변으로 들어선 정권이 일본의 지원을 받아가며 시행한데다가 갑자기 시행한
단발령 때문에 안 그래도 안 좋았던 평판이 아예 바닥으로 떨어지게 된다. 결국 김홍집 내각이
아관파천으로 무너지면서 개혁은 모두 중단되고 만다.
또한
단발령을 강요했기 때문에
을미의병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으며
최익현의 "목을 자를지언정 머리칼을 자를 순 없다"라는 명언이 탄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