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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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전향의 예 [편집]
- 정치적 전향.
- 종목을 바꾼 운동선수
- 축구 -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 골키퍼 등에서 뛰던 선수가 각각 다른 포지션으로 바꿈.
-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 좋아하는 아이돌이 바뀌어 갈아타는것을 전향한다라고 하기도 한다.
3. 정치적 전향 [편집]
3.1. 변절과의 차이점 [편집]
보통 적이 된 아군을 두고 변절이나 배신이라고 하긴 하지만 전향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사상의 자유에 따른 선택이다. 그리고 사람의 생각은 바뀔 수도 있고 실제로 그렇다. 단순히 전향했다고 배신이나 변절이라 하는 것은 곤란하고 내부고발자를 비난하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내가 하면 전향이고 남이하면 배신
간혹 자신들과 사상적 지향점은 다르면서 연대를 했던 사람들이 본래의 방향대로 나아가는 것을 전향이라고 매도하여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 관련글 특히 대한민국 제5공화국당시의 운동권 출신 인물들에 대한 비난이 있는 편이다. 박종운 같은 인면수심의 예도 있지만 당시에 노선, 사상적 지향점이 제각각인데도 대통령 직선제 쟁취, 군사독재 종결이라는 목표 아래 적의 적은 나의 친구로써 함께 행동하기도 했다.
물론 매국노 같은 인간도 있긴 하지만 이는 사상 등의 변화라기보다는 이익과의 타협에 가깝다. 이런 경우가 진짜 변절이나 배신, 반역 행위에 해당한다.
간혹 자신들과 사상적 지향점은 다르면서 연대를 했던 사람들이 본래의 방향대로 나아가는 것을 전향이라고 매도하여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 관련글 특히 대한민국 제5공화국당시의 운동권 출신 인물들에 대한 비난이 있는 편이다. 박종운 같은 인면수심의 예도 있지만 당시에 노선, 사상적 지향점이 제각각인데도 대통령 직선제 쟁취, 군사독재 종결이라는 목표 아래 적의 적은 나의 친구로써 함께 행동하기도 했다.
물론 매국노 같은 인간도 있긴 하지만 이는 사상 등의 변화라기보다는 이익과의 타협에 가깝다. 이런 경우가 진짜 변절이나 배신, 반역 행위에 해당한다.
3.2. 실제 사례 [편집]
일제시대 전향 문제는 꽤 심각했다. 특히 좌익계열 때려잡은 것은 독립운동가 때려잡은 것 보다 더더욱 철저하게 했기 때문[1]에, 구 조선인이건 일본인이건, 좌익계열 인사로 구속된 인물들은 형기가 끝난 다음에도 사상전향서를 쓰지 않으면 출옥은 없었다. 이 때문에 일본인 공산주의자, 좌익계 독립운동가, 조선인 공산주의자 할 것 없이 전향서를 쓰고 나와서 감시 받는 수순으로 나간 인물들이 많았다. 아래도 적혀 있지만 이런 것을 쓰고, 해당 내역이 공개되면 원래 집단에게도 비판받고, 본인도 괴로워했기 때문에 진짜로 전향하는 예도 많았다.
남북분단과 6.25 전쟁을 거친 1950년대에는 좌익 공산주의, 사회주의에서 우파 자본주의로의 변화가 자의반, 타의반 대거 발생했다. 이때 생포된 북한군 포로와 남파공작원들 중 일부는 사상전향을 거부하며 1990년대 초반까지 비전향 장기수로 수십년씩 수감생활을 하였다.
1950년대부터 1998년 준법서약제로 바뀌기까지 권위주의 정권기에는 사상전향제도가 존재해 좌파/진보계열 인사에게 사상전향을 강요하여 많은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각종 고문을 가하여 강제적으로 전향을 하게 만든다던지, 출소의 조건으로 일제강점기의 유산인 '사상전향서'를 쓰게하여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지게 만든다던지 하는 형태였다.[2]
구소련과 동유럽 등 현실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냉전체제가 종식된 1990년대 초반에는 구소련식 사회주의 혹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성향을 보이던 학생운동가와 사회운동가들이 대거 전향했다.(ex. PD, ND 그룹) 이들은 서유럽식 사회민주주의(진보정당), 혹은 미국식 자유주의(민주당) 그리고 보수주의(뉴라이트)로 나뉘어졌다.
- 이광수: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 생포된 공작원. 체포 후 전향했다.
- 심영: 해당 문서를 참조.
- 원정화: 원정화 간첩사건 당시 북한의 간첩이었으나 한국으로 전향하였다.[3]
[1] 치안유지법에 의해 좌익계열 독립운동가를 사형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이건 상대적으로 우익계 독립운동 세력이 국내에 잔존할 수 있게 만든 이유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우익은 독립운동만 포기하면 되었지만, 좌익은 독립운동+좌익성향을 동시에 포기해야 일제에게 용납이 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것은 일본인이라고 예외는 아니였다. 애초에 이 법은 일제에서 적용하던 정부비판 봉쇄 목적의 긴급칙령을 법으로 업그레이드한거다.[2] 그깟 종이 1장이 뭐가 대수냐고 하겠지만, A를 믿는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나는 A를 믿지 않(으며 B를 믿)습니다'라는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의 정신을 파괴하는 행위이다. 예를 들어 종교에 비유하자면 절에 다니는 불교 신자를 개처럼 두들겨 패서 '나는 유일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교회가 진리이며, 불교는 사이비입니다!'라고 공개선언하게 강요한다고 생각해 보라.(반대 사례로는 후미에라는 아주 좋은 예시가 있다.) 당대의 전향공작은 이런 식이었다. 인지부조화 문서를 참조할 것.[3] 그런데 원정화가 진짜 남파 간첩이 맞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의 목소리가 존재한다. 조작설의 최초 제기는 2014년 신동아 4월호, 가장 큰 비판자는 역시 탈북한 여동생과 양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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