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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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仁川驛 | Incheon Station |
1. 개요 [편집]
보수 직전의 모습. | 구 역명판. |
보수 이후 모습. | 부역명(차이나타운) 제거 이후 모습. |
수도권 전철 1호선 161번. 인천광역시 중구 제물량로 269 (북성동1가) 소재. 경인선의 시종착역이며 대한민국에는 드문 두단식 승강장을 사용하고 있는 역이다. 부역명은 차이나타운이었으나 계약만료로 해지되었다.
수도권 전철 수인·분당선 K272번. 인천광역시 중구 차이나타운로26번길 12-17 (북성동2가) 소재.
2. 역 정보 [편집]
1899년 9월 18일, 경인선 개통과 함께 영업을 시작한 역이다.
철도 동호인들에게 유명한 First 8[2] 중 하나다.
인천시사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시대에 이 지역을 하인천, 동인천역 일대를 상인천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인천 토박이 어르신들은 인천역 일대를 하인천이라 많이 부르신다. 물론 요즘 세대는 하인천, 상인천을 잘 몰라 시간이 지나면 이 연원조차 사라질 듯하지만 간간히는 남을 것이다.
실제로 인천역 앞 지구대 이름이 하인천지구대이다.
경인선에 일반열차[3]가 다니던 시절인 1960년에 지어진 건물을 아직까지 쓰고 있어서 수도권 전철역답지 않게 간이역 분위기가 나는 몇 안 되는 역이다. 수인선 개통으로 리모델링이 완료되면 현대적인 느낌의 역사로 재탄생할 거라고 추정하던 사람도 있지만 실제로는 한쪽 옆에 지하로 내려가는 유리궁전이 새로 만들어졌고, 기존의 간이역 분위기 나는 역 건물 자체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외형상으로는 그냥 개보수한 정도(차이점은 수인선 개통에 의한 환승통로 추가). 그러나 문화재적 가치 하나만은 충분한데 서울 근교에 이러한 간이역 형태 전철역이 진짜 없다시피하기 때문이다. 경의중앙선만 해도 기존 역사를 싹 밀어버렸고 서울 시내의 간이역 신촌역도 보존은 되어 있지만 민자역사 공간 문제로 인해 절반 이상이 훼손되었을 뿐더러 여객영업을 하지 않는다.
리모델링으로 수도권 전철 수인분당선 지하인천역으로 바로 내려가는 통로만 한쪽에 새로 연결되었다.
두단식 승강장인데다 2면 3선 구조라 회차 용량이 적은 편이다. 이 때문에 급행열차까지 수용할 여력이 없어서 급행열차는 동인천역까지만 운행되고 있다. 애초에 선로도 동인천역까지만 복복선이다.
서울 근교로 서울과 30km 거리밖에 안되는 인천시의 특성 상 서울역, 용산역, 영등포역, 청량리역 등으로 경인선 전철을 이용해 올라가 버려서 서울에서 KTX나 일반열차 등의 여객열차는 현재 정기적인 운행은 하지 않지만, 가끔 관광 목적으로 별빛열차 등의 임시열차가 들어오기도 한다.
사실 엄연히 서울 근교 수도권 전철 1호선의 역으로서 여객 수요는 크지 않고 화물 수요로 먹고 사는 역이다. 특히 해외에서 수입한 석탄을 전국 각지로 보내는 역할이 가장 크다. 다만 이 역할의 경우 지역 주민들과 인천항만공사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서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4]
이 역에는 경인선의 인입선[5]인 축항선[6]이 있다. 인천항은 수도 서울의 항구로서 교역량이 제일 많은 편이라 화물열차도 많이 오갈 수밖에 없어서 수도권 전철 1호선과 함께 화물열차가 경인선을 쭉 공유해왔다. 지금은 송도국제도시에 인천신항이 만들어져서 도로 수송비중이 좀 오르긴 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철도역 중에서 가장 오래된 종점역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 그리고 서울 지하철 최초의 노선 수도권 전철 1호선 둘 다 최초의 종점역 타이틀을 갖고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의 탄생과 함께 종점역으로 시작되어 아직까지도 연장된 적이 없다.[7][8]
그리고 수인선이 이곳까지 개통해도 종착역인 관계로 경인선과 직결되지 않아 종착역이 계속 유지되는 상황이다. 수인선은 지하로 지어졌기 때문에 직결되지 않았다.
점차적으로는 인천역과 인천공항2터미널역을 이어서 수인선, 경강선과 연계되는 제2공항철도 계획이 있기는 하다.
철도 동호인들에게 유명한 First 8[2] 중 하나다.
인천시사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시대에 이 지역을 하인천, 동인천역 일대를 상인천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인천 토박이 어르신들은 인천역 일대를 하인천이라 많이 부르신다. 물론 요즘 세대는 하인천, 상인천을 잘 몰라 시간이 지나면 이 연원조차 사라질 듯하지만 간간히는 남을 것이다.
실제로 인천역 앞 지구대 이름이 하인천지구대이다.
경인선에 일반열차[3]가 다니던 시절인 1960년에 지어진 건물을 아직까지 쓰고 있어서 수도권 전철역답지 않게 간이역 분위기가 나는 몇 안 되는 역이다. 수인선 개통으로 리모델링이 완료되면 현대적인 느낌의 역사로 재탄생할 거라고 추정하던 사람도 있지만 실제로는 한쪽 옆에 지하로 내려가는 유리궁전이 새로 만들어졌고, 기존의 간이역 분위기 나는 역 건물 자체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외형상으로는 그냥 개보수한 정도(차이점은 수인선 개통에 의한 환승통로 추가). 그러나 문화재적 가치 하나만은 충분한데 서울 근교에 이러한 간이역 형태 전철역이 진짜 없다시피하기 때문이다. 경의중앙선만 해도 기존 역사를 싹 밀어버렸고 서울 시내의 간이역 신촌역도 보존은 되어 있지만 민자역사 공간 문제로 인해 절반 이상이 훼손되었을 뿐더러 여객영업을 하지 않는다.
리모델링으로 수도권 전철 수인분당선 지하인천역으로 바로 내려가는 통로만 한쪽에 새로 연결되었다.
두단식 승강장인데다 2면 3선 구조라 회차 용량이 적은 편이다. 이 때문에 급행열차까지 수용할 여력이 없어서 급행열차는 동인천역까지만 운행되고 있다. 애초에 선로도 동인천역까지만 복복선이다.
서울 근교로 서울과 30km 거리밖에 안되는 인천시의 특성 상 서울역, 용산역, 영등포역, 청량리역 등으로 경인선 전철을 이용해 올라가 버려서 서울에서 KTX나 일반열차 등의 여객열차는 현재 정기적인 운행은 하지 않지만, 가끔 관광 목적으로 별빛열차 등의 임시열차가 들어오기도 한다.
사실 엄연히 서울 근교 수도권 전철 1호선의 역으로서 여객 수요는 크지 않고 화물 수요로 먹고 사는 역이다. 특히 해외에서 수입한 석탄을 전국 각지로 보내는 역할이 가장 크다. 다만 이 역할의 경우 지역 주민들과 인천항만공사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서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4]
이 역에는 경인선의 인입선[5]인 축항선[6]이 있다. 인천항은 수도 서울의 항구로서 교역량이 제일 많은 편이라 화물열차도 많이 오갈 수밖에 없어서 수도권 전철 1호선과 함께 화물열차가 경인선을 쭉 공유해왔다. 지금은 송도국제도시에 인천신항이 만들어져서 도로 수송비중이 좀 오르긴 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철도역 중에서 가장 오래된 종점역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 그리고 서울 지하철 최초의 노선 수도권 전철 1호선 둘 다 최초의 종점역 타이틀을 갖고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의 탄생과 함께 종점역으로 시작되어 아직까지도 연장된 적이 없다.[7][8]
그리고 수인선이 이곳까지 개통해도 종착역인 관계로 경인선과 직결되지 않아 종착역이 계속 유지되는 상황이다. 수인선은 지하로 지어졌기 때문에 직결되지 않았다.
점차적으로는 인천역과 인천공항2터미널역을 이어서 수인선, 경강선과 연계되는 제2공항철도 계획이 있기는 하다.
파일:attachment/인천역/incheonsuin.jpg 수인선 인천역 조감도 |
수인선 복선전철화 사업 2차 구간의 종점이다. 수도권 전철 수인선 인천역은 인천역 앞 도로의 지하 3층에 섬식 승강장으로 새로 건설되었다.
원래는 동인천역에서 얼마 안 가 끊어져 있는 경인선의 급행선로를 지하로 연장하여 수인선과 경인선을 직결시키려 했으나, 이 계획은 폐지되었다. 수인선 회차선에서 경인선 급행선로 끝자락까지의 곡선거리가 약 1㎞ 정도뿐이다.
수인선 인천역과 지상 동인천역의 선로는 추후 추가 예정이긴 한데,[9] 인천역세권개발사업과 맞물려 돌아갈 듯하다.
원래 출구가 하나밖에 없으나 수인선이 개통되면 출구가 3개(2~4번) 더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막상 개통 후에는 한 출구가 서울 1호선 측 1번 출구와 번호를 공유한다. 그래서 공식적인 출구는 2개 늘어난 3개다.
수인·분당선 개통 후 수인선의 역번호가 K264번에서 K272번으로 바뀌었다. 출처
2.1. 지선 [편집]
3. 일평균 이용객 [편집]
인천역을 이용하는 광역철도 일일 승객 수이다. 아래 표는 승차객 + 하차객의 총합이며, 광역철도 간의 직접 환승객 수는 나타내지 않는다.
[ 1974년~2009년 ]
| |||||||||||||||||||||||||||||||||||||||||||||||||||||||||||||||||||||||||||||||||||||
2010년 | 2011년 | 2012년 | 2013년 | 2014년 | 2015년 | 2016년 | 2017년 | 2018년 | 2019년 | ||||||||||||||||||||||||||||||||||||||||||||||||||||||||||||||||||||||||||||
7,647명 | 7,840명 | 7,642명 | 7,577명 | 8,571명 | 8,279명 | 8,552명 | 8,416명 | 7,659명 | 8,013명 | ||||||||||||||||||||||||||||||||||||||||||||||||||||||||||||||||||||||||||||
2020년 | |||||||||||||||||||||||||||||||||||||||||||||||||||||||||||||||||||||||||||||||||||||
4,682명 | |||||||||||||||||||||||||||||||||||||||||||||||||||||||||||||||||||||||||||||||||||||
2016년 | 2017년 | 2018년 | 2019년 | ||||||||||||||||||||||||||||||||||||||||||||||||||||||||||||||||||||||||||||||||||
3,974명 | 3,704명 | 3,600명 | 3,760명 | ||||||||||||||||||||||||||||||||||||||||||||||||||||||||||||||||||||||||||||||||||
2020년 | |||||||||||||||||||||||||||||||||||||||||||||||||||||||||||||||||||||||||||||||||||||
2,633명 | |||||||||||||||||||||||||||||||||||||||||||||||||||||||||||||||||||||||||||||||||||||
- 수인선의 2016년 자료는 개통일인 2월 27일부터 12월 31일까지 309일간의 집계를 반영한 것이다.
경인선과 수인선의 종점으로서 인천항을 끼고 있는 인천역은 이용률이 저조한 편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저조한 것은 아니었다.
인천역의 경우 1979년에 일평균 이용객의 최고치인 2만 1천명을 기록하였는데, 기록할 당시에도 이미 인천시 구도심으로 찍혀 있었다. 1979년 이후에도 1980년, 1988년, 1999년에 2만명선을 찍었으나 1979년의 기록을 넘지는 못했고 그 이후부터 이용객이 급감하여 2020년 기준 15년도 더 전인 2004년에 1만명 선마저 붕괴되어 말만 간이역이었던 인천역은 이제는 진짜 간이역이 되고 말았다.
서울 1호선 즉 수도권 전철 1호선의 종점이라는 상징성이 있음에도 경인선 단독으로 하루 평균 이용객이 1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수인선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하루 평균 3,700여 명에 불과해 수인선의 역 중 뒤에서 2등을 기록하고 있다. 뒤에서 1등은 주거지 자체를 보기 힘든 달월역인 만큼 실질적 최하위나 마찬가지이다. 두 노선의 이용객을 합쳐도 11,773명 밖에 안 된다.
그 이유는 인천역 이용객의 대다수가 공단 노동자이거나 차이나타운과 월미도를 찾는 관광객인 데에서 기인한다.
너무 오래전부터 개발된 구도심 지역인지라 이미 도심 공동화는 심각하게 진행된 지 오래며, 그나마도 역 뒤로는 죄다 인천항 부두인 까닭에 역세권의 범위가 넓지도 않다.
그래서 지역 주민들의 숫자 자체가 적어 외부인으로만 역의 수요를 충당하려다 보니, 노선의 끄트머리란 치명적인 문제가 겹쳐 이용객을 많이 끌어오지 못하는 것이다. 주거지는 모두 남동구와 서구, 연수구, 부평구, 계양구 일대로 옮겨간 지 오래고 시청도 남동구 구월동으로 내려간지라 이 역에서 볼 재미 같은 건 없었다.
사실상 인천 차이나타운과 월미도, 월미바다열차, 인천항 갑판이 인천역을 먹여 살리는 기둥인 셈이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1호선+수인분당선의 이용객 수를 합쳐도 7,315명으로 줄어들었다.
4. 승강장 [편집]
4.1. 수도권 전철 1호선 [편집]
리모델링 전 인천역 역사 모습. | |
리모델링 전의 승강장 모습.(2012년) | 리모델링 후의 승강장 모습.(2017년) |
↑ 동인천 | |||||
3 | ㅣ | ㅣ | 2 | 1 | ㅣ |
종착역 | |||||
1 | 완행 | ||
2 | 완행 | ||
3 | 완행 |
회차선이 없는 대신에 터미널 방식의 승강장이어서 승강장선이 회차선이나 다름 없다.
인천에 위치한 수도권 전철 1호선 역 중 유일하게 스크린도어가 없다.[10] 덕분에 앞쪽/뒷쪽 포인트에서 사진을 쉽게 찍을 수 있다. 철덕들에겐 좋은 장소.
인천역세권개발사업 이후로 스크린도어를 공사할 것으로 보이지만, 승강장[11] 구조 개량 작업을 하고 난 이후로 설치를 해야 할 듯 싶다.
인천역에 진입하는 열차는 인천역 진입 전에 있는 고가도로[12]에서부터 서행하며 들어오기 때문에[13] 선로에 추락하는 등의 사고가 발생할 경우 다른 역에 비해 대처하기 쉬운 편이며, 부상/사망 발생률도 다른 역에 비해 낮은 편이다. 승강장 간격이 30cm 가량일 정도로 매우 넓은 것도 이유이긴 하다.
이 역에서 동인천 쪽으로 조금 더 가면 주박기지가 작게나마 보인다. 역 자체는 여수엑스포역처럼 터미널역 식으로 되어 있는지라 이 역에서 바다쪽으로는 아예 막혀 있다.
인천에 위치한 수도권 전철 1호선 역 중 유일하게 스크린도어가 없다.[10] 덕분에 앞쪽/뒷쪽 포인트에서 사진을 쉽게 찍을 수 있다. 철덕들에겐 좋은 장소.
인천역세권개발사업 이후로 스크린도어를 공사할 것으로 보이지만, 승강장[11] 구조 개량 작업을 하고 난 이후로 설치를 해야 할 듯 싶다.
인천역에 진입하는 열차는 인천역 진입 전에 있는 고가도로[12]에서부터 서행하며 들어오기 때문에[13] 선로에 추락하는 등의 사고가 발생할 경우 다른 역에 비해 대처하기 쉬운 편이며, 부상/사망 발생률도 다른 역에 비해 낮은 편이다. 승강장 간격이 30cm 가량일 정도로 매우 넓은 것도 이유이긴 하다.
이 역에서 동인천 쪽으로 조금 더 가면 주박기지가 작게나마 보인다. 역 자체는 여수엑스포역처럼 터미널역 식으로 되어 있는지라 이 역에서 바다쪽으로는 아예 막혀 있다.
4.2. 수도권 전철 수인·분당선 [편집]
파일:인천역 승강장(수인선).jpg
수도권 전철 수인·분당선 승강장 크게보기
2003년 분당선 도곡역 이후로 13년만에 섬식으로 지어진 한국철도공사 소속의 지하역이다.
한국철도공사 전산상에는 분당선 수원역과 동일하게 신인천역으로 표기된다. 환승띠는 없으나 표지판으로 편의성을 높였다.
분당선을 포함하여 섬식/쌍섬식 승강장을 가진 역 중에서 유일하게 터널식 벽면이 일부 반영되어 있다. 해당 형태의 벽면이 만들어진 것은 인천국제공항철도 2단계 서울역 이후 꽤나 오랜만이다. 개통식날 확인 결과 승강장 측 역명판이 붙어 있지 않다.
신인천역의 운전취급은 송도역에서 제어한다.
수도권 전철 수인·분당선 승강장 크게보기
2003년 분당선 도곡역 이후로 13년만에 섬식으로 지어진 한국철도공사 소속의 지하역이다.
한국철도공사 전산상에는 분당선 수원역과 동일하게 신인천역으로 표기된다. 환승띠는 없으나 표지판으로 편의성을 높였다.
분당선을 포함하여 섬식/쌍섬식 승강장을 가진 역 중에서 유일하게 터널식 벽면이 일부 반영되어 있다. 해당 형태의 벽면이 만들어진 것은 인천국제공항철도 2단계 서울역 이후 꽤나 오랜만이다. 개통식날 확인 결과 승강장 측 역명판이 붙어 있지 않다.
신인천역의 운전취급은 송도역에서 제어한다.
↑ 신포 | |||
ㅣ | 2 | 1 | ㅣ |
종착역 | |||
1 | 당역종착 | |
2 |
5. 역 주변 정보 [편집]
5.1. 관련 문서 [편집]
6. 연계 교통 [편집]
인천역(차이나타운)(35178)
| |
인천역(차이나타운)(35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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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기타 [편집]
- 인천이라는 지역대표명을 사용하는 역임에도 불구하고, 서울특별시의 서울역, 부산광역시의 부산역, 대구광역시의 동대구역, 대전광역시의 대전역, 울산광역시의 울산역, 광주광역시의 광주송정역 등과 비교하면 역의 규모가 매우 초라한데, 현재는 이 지역이 인천의 낙후된 구도심이지만 경인선이 개통될 당시에는 인천항 일대가 인천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17] 또 인천광역시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KTX역이 없는 광역시라는 것과 무궁화호나 ITX-새마을 등 일반철도도 현재 운행되고 있는 것이 없어서 인천 출발로만 치면 시외버스의 초강세 지역이기 때문에 철도가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도 한 몫 했다고 볼 수 있다.[18] 인천은 서울 근교로서 전통적으로 경인선을 이용하여 영등포역, 서울역, 용산역, 청량리역 등지로 이동해 열차를 이용할 수 있으며, KTX의 영등포역 정차 문제를 가지고 논의하던 시절 영등포역이 노리는 수요가 서울 서남부와 함께 인천, 부천, 시흥, 안양, 안산 수요였다. 이들 모두 수도권 전철 1호선으로 영등포까지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따라서 인천역은 경인선의 그저 그런, 평범한 종점역으로 남게 되었다. 대구역이나 광주역도 각각 해당 광역시의 중추 철도역 기능은 동대구역과 광주송정역으로 넘어갔으나 여전히 주요한 철도역 중 하나로 남아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 1호선 인천행을 타면 승객들이 대부분 인천역 이전의 다른 역에서 내리지만, 운이 좋다면(?) 인천역에서 종점의 기적을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술취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날치기도 꽤 심하게 일어나기도 하는 지역이었다.
- 1호선 측의 열차도착 안내방송 목소리가 인천교통공사에서 사용하는 안내방송 목소리와 비슷하다.
- 서울교통공사 열차의 종착역 중 유일하게 노선 상의 종착역이다.
응?
8. 인천역 구내 충돌 사고 [편집]
[1] 회차선[2] 한국 역사상 최초로 운행한 노면전차를 제외한 철도역. 당시 인천역의 이름은 '제물포역'이었고 지금의 제물포역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의 제물포역이 생길 때 여기서 이름을 따왔다.[3] 디젤동차로 비둘기호가 다녔다.[4] [축항조차장·석탄화물열차 '눈엣가시'] 개항창조도시 걸림돌 (2015-11-10, 인천일보)[5] 역으로부터 공장, 창고, 또는 철재, 광석 하역장까지 갈라져 들어간 선로[6] 제3부두선, 석탄부두선[7] 반대편의 경우 최초에는 노량진역까지만 개통되었다.[8] 연장이 어려운 두단식 승강장 구조로 지어지기도 했고, 이 역에서 정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해가 있기 때문에 연장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선로 주변으로 수많은 구조물이 있어 연장은 더욱 불가능하다. 당장 선로종단점 바로 앞에 월미은하레일 월미바다역 역사(驛舍)가 위치하고 있다.[9] 동인천역에서 서울 1호선 인천역으로 가는 방면에 부지가 마련되어 있다.[10] 1호선 전체로 확대해보면 천안, 창동, 소요산역도 마찬가지로 스크린도어 미설치역이다. 천안역은 신역사 완공 이후, 소요산역은 연천 방면으로의 연장이 완료될 경우 설치될 것으로 보이며, 창동역은 민자역사 계획이 엎어지는 바람에 공사를 한동안 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2021년 이내로 설치 계획이 존재한다고 한다.[11] 부천역, 구로역, 서울역, 의정부역, 소요산역 방향[12] 2번 버스 등이 다니는 도로[13] 진짜로 걸어가는 수준의 속도로 서행한다.[14] 쌍굴방식 단선 터널이기 때문이다.[15] 그것도 인천 지하역사와 회차선을 만든 후에야 계획이 취소되어서 불필요하게 예산만 낭비되었다.[환승불가] 교통카드를 이용할 수 없다. 그래서 돈은 타 대중교통과 별도로 내야 한다.[17] 인천의 도심이 남동구, 부평구 등지로 이동한 것은 1985년에 현재의 위치로 인천광역시청을 이전한 이후이다. 즉 1985년 이전까지는 지금의 중구, 동구 일대가 인천의 중심지였다는 것이다. 다음 역인 동인천역이 인천의 서쪽임에도 ‘동’인천인 것은,과거 인천 시가지의 동쪽 끝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에 부평과 계양 일대는 행정구역도 달라서 부평은 인천이 아닌 경기도 부평군이었으며 계양은 경기도 김포군 계양면이었다.[18] 백운역에서 가끔씩 전세편 열차가 운행되기는 한다.[19] 단,인천 구도심의 중국인은 청나라 말기~초기 중화민국 출신 화교이다. 따라서 대부분 대만 국적 혹은 대한민국으로 귀화한 사람들을 말한다. 이 지역에서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십중팔구 인천항을 통해 출국하는 조선족일 가능성이 크다.[20] '115년 역사' 인천역 철거 위기…시민단체 "역사문화자산 보존해야" (2015-04-29,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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