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호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이한호 (李漢鎬) | |
복무 | 대한민국 공군 |
기간 | 1969년 ~ 2005년 |
본관 | |
임관 | 공사 17기 |
최종계급 | 대장 |
최종보직 | 공군참모총장 |
주요보직 | 제3훈련비행단장 제19전투비행단장 전투발전단장 국방부 조직인력관 공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장 공군참모차장 공군작전사령관 |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1946년 3월 6일 경상남도 울산에서 태어났으며, 학성 이씨[1]다. 농소초등학교(30회), 부산고등학교(17회)를 졸업하고 1965년 공군사관학교 17기로 입학해 1969년 임관했다. 제3훈련비행단장, 제19전투비행단장, 전투발전단장, 국방부 조직인력관, 공본 정보작전참모부장, 공군참모차장, 작전사령관을 거쳐 2003년에 공군참모총장에 올랐다.[2] 당시 경쟁자들은 공사 16기였던 합동참모차장 주창성 중장, 공사 교장 박성국 중장, 공사 18기였던 천기광 공군참모차장 등이 거론됐다. 2005년 1월 5일 참모총장 재직중에 직접 T-50 골든이글 시제기를 타고 시험비행을 하기도 했다. 2005년에 전역했다. 후임자는 김성일 대장이었다.
전역 후에 한서대학교 초빙교수를 지내다가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 해외자원개발협회 부회장 등을 지냈다.
파일:/image/003/2012/11/14/NISI20121114_0007329769_web_59_20121114133420.jpg
2012년 대선 당시에 안철수 캠프의 국방안보포럼에 참여했다. F-15SE 도입에 반대 의견을 냈다. 합동참모의장의 군령권을 참모총장들에게 나눠준다는 상부지휘구조 개편에 강하게 반대했다.[3]
전역 후에 한서대학교 초빙교수를 지내다가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 해외자원개발협회 부회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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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 당시에 안철수 캠프의 국방안보포럼에 참여했다. F-15SE 도입에 반대 의견을 냈다. 합동참모의장의 군령권을 참모총장들에게 나눠준다는 상부지휘구조 개편에 강하게 반대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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