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길(야구)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이름 | 이정길(李廷佶) |
생년월일 | |
출신지 | |
학력 | |
포지션 | |
투타 | |
프로입단 | |
소속팀 | LG 트윈스(1996~2000) |
1. 소개 [편집]
전 LG 트윈스 소속 투수이자, 골수 올드 LG팬 감별사 2급 문제 정도에 해당하는 선수.
2. 고교시절 [편집]
3. 프로 입단 [편집]
3.1. 4억의 계약금, 그리고… [편집]
그리고 1996년, LG 트윈스는 그를 1차 지명하며 당시 역대 최고액인 4억 원(계약금 3억 8천만 원+연봉 2천만원)을 쥐어주는 모험을 하는데, 물론 이정길이 실력이 모자란 투수는 아니었지만 연세대학교 내에서도 1년 선배 문동환, 동기생 임선동의 그늘에 가려진 2인자에 지나지 않았고 연세대학교 시절 보여준 성적도 그다지 돋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계약은 사람들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입단 계약 후 이정길 본인조차 제시 계약금을 되물어보며 귀를 의심했었다고 할 정도로 뜬금없는 오버페이였다.[1][2]
이정길이 이토록 상상 이상의 많은 계약금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이정길이 이토록 상상 이상의 많은 계약금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 일단 당시 거대 실업야구 팀 현대 피닉스가 국가대표급 아마추어 선수들을 대거 쓸어담는 바람에 아마추어 신인들의 몸값 거품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던 데다가, LG가 이미 휘문고 시절에 1차 지명해 두었던 임선동이 일본프로야구(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진출을 선언하며 LG 입단이 불투명해지자 결국 LG는 꿩 대신 닭이라고, 임선동을 잡기 위해 모아둔 돈을 이정길에게 쏟아부은 것이다.
3.2. 1군 등판, 그리고 은퇴 [편집]
1999년에 드디어 입단 후 처음으로 1군에 올라와 한화 이글스전에서 감격의 첫 승을 거두는데, 이때 그 동안의 마음고생이 떠올랐는지 인터뷰 중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이후 또 다시 부상이 도졌고 그는 결국 쓸쓸히 유니폼을 벗게 된다. 1999년에 기록한 5경기 10⅔이닝 1승 1패, 평균자책점 12.66이 이정길이 프로에서 남긴 성적의 전부였다.
어쨌든 이정길은 이후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악의 먹튀 중 한 명으로 기억된다. LG 트윈스에 있어서도 하나의 흑역사로 기록된 선수. 분명 큰 기대를 걸 만한 선수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런 큰 금액을 지불한 건 LG 트윈스 구단의 무리한 투자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5경기밖에 뛰지 못했다는 건 먹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참담한 성적은 덤.
선수 생활을 마감한 이후의 근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이후 또 다시 부상이 도졌고 그는 결국 쓸쓸히 유니폼을 벗게 된다. 1999년에 기록한 5경기 10⅔이닝 1승 1패, 평균자책점 12.66이 이정길이 프로에서 남긴 성적의 전부였다.
어쨌든 이정길은 이후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악의 먹튀 중 한 명으로 기억된다. LG 트윈스에 있어서도 하나의 흑역사로 기록된 선수. 분명 큰 기대를 걸 만한 선수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런 큰 금액을 지불한 건 LG 트윈스 구단의 무리한 투자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5경기밖에 뛰지 못했다는 건 먹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참담한 성적은 덤.
선수 생활을 마감한 이후의 근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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