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흥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분류
역임 지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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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
사망 | |
본관 | |
호 | 겸산(兼山) |
재임기간 | 제2대 서울특별시 부시장 |
1952년 3월 14일 ~ 1953년 11월 | |
제4대 경기도지사 | |
1953년 11월 23일 ~ 1956년 5월 21일 | |
제13대 내무부 장관 | |
1956년 5월 21일 ~ 1957년 2월 4일 | |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1905년 평안북도 선천군에서 태어났다. 1926년 평양고등보통학교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마쓰야마고등학교(松山高等學校)와 규슈제국대학 법과를 졸업하였다. 1934년 동경제국대학 대학원에 입학하였으나 재학 중에 부친상으로 귀국하였다.
이후 평안북도 경찰국 경부와 평안북도 박천경찰서장으로 재임하는 등 친일 행적이 있다.
1948년 월남하여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헌병대에서 영관급 장교로 복무하였다. 6.25 전쟁 중인 1950년 8월 대령으로 예편하였다. 이후 다시 경찰로 근무하여 1951년부터 1952년까지 내무부 치안국장(1950년대~1960년대의 이사관급 경찰총수)이 되었다. 1953년부터 1956년까지 제4대 경기도지사를 역임하였다. 이 때 치러진 사사오입 개헌에 대한 공로로 1956년부터 1957년까지 내무부(현 행정자치부)장관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1956년 11월에 있었던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의 여파로 1957년 사임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기도 연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0년 4.19 혁명 후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 배후에 자신이 포함되어 있다는 김종원 전 치안국장의 폭로로 1961년 3월 고등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5.16 군사정변 후인 1963년 특사로 석방되었다. 정계 은퇴후에는 이북 실향민 단체에서 활동하였고, 1993년 별세하였다.
이후 평안북도 경찰국 경부와 평안북도 박천경찰서장으로 재임하는 등 친일 행적이 있다.
1948년 월남하여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헌병대에서 영관급 장교로 복무하였다. 6.25 전쟁 중인 1950년 8월 대령으로 예편하였다. 이후 다시 경찰로 근무하여 1951년부터 1952년까지 내무부 치안국장(1950년대~1960년대의 이사관급 경찰총수)이 되었다. 1953년부터 1956년까지 제4대 경기도지사를 역임하였다. 이 때 치러진 사사오입 개헌에 대한 공로로 1956년부터 1957년까지 내무부(현 행정자치부)장관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1956년 11월에 있었던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의 여파로 1957년 사임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기도 연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0년 4.19 혁명 후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 배후에 자신이 포함되어 있다는 김종원 전 치안국장의 폭로로 1961년 3월 고등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5.16 군사정변 후인 1963년 특사로 석방되었다. 정계 은퇴후에는 이북 실향민 단체에서 활동하였고, 1993년 별세하였다.
3. 여담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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