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발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소개 [편집]
李時發, 1569년 ~ 1626년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벽오(碧梧)이며 20세의 나이에 급제,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조직했으며 이항복의 추천으로 공을 인정받고, 류성룡을 도와 왜군을 무찔렀으며 그 외에도 '이몽학의 난'을 진압하고 군량 조달에 힘썼다.
광해군 당시 인목대비 폐위에 반대, 낙향하나 왕의 특명으로 평안도의 민심을 바로잡고 강홍립의 투항으로 흉흉한 북방의 방비를 튼튼히 지킨다.
인조반정 후 '이괄의 난'을 진압했으며 오랜 실무 경험으로 호란이 일어날 것을 예견해 훗날 병자호란의 중심이 되는 남한산성을 보수 중 병사한 뒤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그의 자식들도 모두 고관에 오른 명문 집안.
그는 중국어와 군사, 행정 실무에 모두 능한 유능한 관료로 항상 난리의 정점에 선 그였으나 국사 책에 실리지 못한 이유는 역시 이름...은 그냥 웃자고 하는 이야기고, 대중서도 아니고 교과서에 그딴 이유로 이름이 실리지 않는다는건 말이 안되는 소리다.[1] 국사책은 다뤄야 할 시대는 많고 분량은 한정 되어 있어서 시대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쳤을 정도로 웬만큼 중요한 인물 아니고서는 개개인의 이름을 일일이 실어주지 않는다.
여러모로 왕자지, 김자지와 같은 케이스라 보면 된다. 호가 벽오라 이벽오라 칭할 수 있으니 등재할 수 없는것 만은 아니다.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벽오(碧梧)이며 20세의 나이에 급제,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조직했으며 이항복의 추천으로 공을 인정받고, 류성룡을 도와 왜군을 무찔렀으며 그 외에도 '이몽학의 난'을 진압하고 군량 조달에 힘썼다.
광해군 당시 인목대비 폐위에 반대, 낙향하나 왕의 특명으로 평안도의 민심을 바로잡고 강홍립의 투항으로 흉흉한 북방의 방비를 튼튼히 지킨다.
인조반정 후 '이괄의 난'을 진압했으며 오랜 실무 경험으로 호란이 일어날 것을 예견해 훗날 병자호란의 중심이 되는 남한산성을 보수 중 병사한 뒤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그의 자식들도 모두 고관에 오른 명문 집안.
그는 중국어와 군사, 행정 실무에 모두 능한 유능한 관료로 항상 난리의 정점에 선 그였으나 국사 책에 실리지 못한 이유는 역시 이름...은 그냥 웃자고 하는 이야기고, 대중서도 아니고 교과서에 그딴 이유로 이름이 실리지 않는다는건 말이 안되는 소리다.[1] 국사책은 다뤄야 할 시대는 많고 분량은 한정 되어 있어서 시대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쳤을 정도로 웬만큼 중요한 인물 아니고서는 개개인의 이름을 일일이 실어주지 않는다.
여러모로 왕자지, 김자지와 같은 케이스라 보면 된다. 호가 벽오라 이벽오라 칭할 수 있으니 등재할 수 없는것 만은 아니다.
2. 그 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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