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성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이범성은 1890년 11월 2일 경상도 인동도호부(현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7일 대구 계성학교 학생 이영식(李永植)과 이내성은 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인동면 진평동의 이상백의 집을 찾았다. 그곳에서 이범성·이내성·이영식은 3월 12일 만세시위를 하기로 하고 의논하고 이상백·권용섭(權鏞燮)은 이영식과 이내성이 가져온 독립선언서를 필사하였다. 나흘 후인 11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만세시위 당일에 사용할 태극기를 만들었다.
그들은 3월 12일 거사 당일 오후 8시경 마을 뒷산에 마을 주민 약 200명을 모아놓고 '한국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3월 14일 오후 9시경 다시 마을 뒷산에 모여서 함께 '한국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들은 밤이 깊도록 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하다가 일본 군경에 의해 주동 인물 8명이 체포되고 군중은 강제로 해산되었다.
그도 체포된 후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1919년 4월 7일 대구지검에서 기소중지로 불기소처분을 받고 출옥하였다.#
출옥 후에는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1967년 4월 25일 별세하였다.
2018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1919년 3월 7일 대구 계성학교 학생 이영식(李永植)과 이내성은 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인동면 진평동의 이상백의 집을 찾았다. 그곳에서 이범성·이내성·이영식은 3월 12일 만세시위를 하기로 하고 의논하고 이상백·권용섭(權鏞燮)은 이영식과 이내성이 가져온 독립선언서를 필사하였다. 나흘 후인 11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만세시위 당일에 사용할 태극기를 만들었다.
그들은 3월 12일 거사 당일 오후 8시경 마을 뒷산에 마을 주민 약 200명을 모아놓고 '한국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3월 14일 오후 9시경 다시 마을 뒷산에 모여서 함께 '한국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들은 밤이 깊도록 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하다가 일본 군경에 의해 주동 인물 8명이 체포되고 군중은 강제로 해산되었다.
그도 체포된 후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1919년 4월 7일 대구지검에서 기소중지로 불기소처분을 받고 출옥하였다.#
출옥 후에는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1967년 4월 25일 별세하였다.
2018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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