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내성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이내성(李乃成)
이명
이내성(李乃城)
본관
생몰
경상도 인동도호부
(현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1]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목차
1. 개요2. 생애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이내성은 1893년 4월 1일 경상도 인동도호부(현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의 평민 집안에서 태어났다. 미곡상을 하며 생계를 이어나갔다.

1919년 경성부대구부 등지에서 3.1 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여 고향 칠곡군 인동면 진평리에서 200여명을 규합,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 일로 그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형을 언도받고#, 이에 공소하였으나 그해 6월 1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어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복역 중에 특별 사면을 받아 징역 9개월형으로 감형되었으며, 1920년 4월 27일 출옥하였다.#

1926년 그는 장진홍과 함께 보다 직접적인 항일투쟁을 결의하고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거사준비에 총참모로서 협력하였다가 이후 일본 경찰의 추적을 받고 피신하던 중, 1927년 8월 17일 선산군 구미면에서 자결, 순국하였다.[2]

198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이 추서되었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1] 경주 이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김성윤·박근술·박명언·박명출·박봉술·박삼봉·박순석·이범성·이상백·이영래·이윤약도 이 마을 출신이다.[2] 그런데, 사후 1929년 4월 1일 대구지검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및 폭발물 취체벌칙 위반 혐의에 대해 공소를 수리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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