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거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應璩
(190 ~ 252)

삼국시대 위나라의 관리이자 문학가. 자는 휴련(休璉). 응창의 동생, 응정의 아버지.

여남 사람으로 넓게 배우고 글을 잘 쓰면서 서기에 능했으며, 조비, 조예 때 산기상시를 역임했다. 유정에게 지방으로 나아가서 하는 정치에 대해 충고하는 편지를 보냈다.

조방이 즉위하자 점차 시중, 대장군 장사로 옮겼으며, 조상이 정권을 잡고 사치, 낭비에 빠지면서 파당을 조직해 측근들을 중용하고 500여 명의 빈객을 거리는 등 법도를 어기자 시로써 이를 풍자하면서 간했다.

그 말은 비록 생각보다 매우 화합했지만 시요에 많이 적중해 세상에서 칭해졌으며, 다시 시중이 되어 저작을 권장했다. 252년에 죽자 위위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여유공재서가 있고 그 당시 유명했던 광릉산이라는 작품에 대해 광릉의 청산함을 듣는다고 평가했으며, 오늘날에는 밭을 가는 세 노인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 시 한 수가 남아있다.

1. 창작물에서 [편집]

소설 비열한 성자 조조에서는 오관중랑장부에서 열리는 연회에서 관직이 없는 상태로 참석했고 사람들에게 주건평을 소개하면서 그의 관상을 보는 능력에 대해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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