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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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규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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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MBC 청룡 등번호 17번
박석채(1982~1984)
윤덕규(1985~1989)
팀 해체
LG 트윈스 등번호 17번
팀 창단
윤덕규(1990~1992.06.29)
박준태(1992.06.30~1999)
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3번
정상진(1991~1992.06.29)
윤덕규(1992.06.30~1995)
팀 해체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3번
팀 창단
윤덕규(1996~1997)
이흥태(1999)
LG 트윈스 등번호 78번
결번
윤덕규(2007~2009)
이종열(2010~2011)



파일:external/opds.joins.com/200906231716331101_1.jpg
LG 트윈스 코치 시절, 넥센 히어로즈 8번을 달던 시절의 정수성에게 안긴 모습이다.
이름
윤덕규(尹德奎)
생년월일
출신지
서울특별시
학력
포지션
3루수좌투좌타인데?, 외야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85년 MBC 청룡 1차 지명
소속팀

목차
1. 소개2. 선수 시절3. 지도자 시절4.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편집]

LG 트윈스, 태평양 돌핀스의 선수, 코치. 애칭은 초구의 사나이.

2. 선수 시절 [편집]

대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실업팀인 한국상업은행에서 뛰다가, 1985년 MBC 청룡의 1차 지명을 받아 프로에 입문했다. 비록 고졸이었지만 고교 선배인 김재박의 인맥으로 분류돼 첫 해부터 주전 자리를 꿰차며 순탄한 선수생활을 했다. 초구부터 과감하게 스윙해 만든 우중간 안타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렇게 세 차례 3할 타율을 기록하고, 1990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까지 차지하며 청룡/LG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는 듯 했다.

그러나 이광환 감독이 취임한 후 김재박태평양 돌핀스트레이드되고, 초구부터 스윙하는 타격 습관에 대해 지적받는 등 주전 자리를 잃어 1992년 6월 30일, 2:1 트레이드로 태평양으로 이적했다. 이때 윤덕규를 대신해 LG 유니폼을 입게 된 선수 중 하나가 박준태다.[1] 태평양 이적 후에도 3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하며 김경기, 김동기와 함께 'YKK포'로 불리웠고, 김원형이 던진 공을 김인호가 헤딩(?)해 버린 사건으로 유명했던 1996년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김인호의 다음 타석에 나와 결승 싹쓸이 3루타를 기록하는 등 팀의 클린업으로 활약하고 1997년에 은퇴했다.[2] 1994년엔 데뷔 후 처음으로 올스타로도 선출됐다.이때 인터뷰에서 스스로 별명이 영원한 3할 타자라고 언급. 그럴 만하다고 생각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유난히 초구를 치는 걸 좋아했고, 이게 윤덕규만의 특징으로 각인됐다. 심지어 어떤 경기에서 윤덕규가 그날 전 타석에서 초구를 공략하자 어떤 코치는 모든 선수들이 윤덕규같으면 경기가 50분만에 끝날 텐데란 말로 윤덕규의 초구 사랑을 극찬(?)한 바가 있다.

동아일보에서 초구 관련 기사를 다뤘는데, 초구타격의 장점과 수싸움 활용법 등을 이야기했다.원문보기

3. 지도자 시절 [편집]

이렇듯 선수로서의 경력은 훌륭했지만, 지도자 생활은 다소 불운한 편. 고교 선배인 김재박 감독 덕분에 현대 2군 코치로 공무원같은 안정적인 지위를 누리던 2002년 말 스승인 백골프의 권유로 롯데 코치로 이적했지만, 백골프의 경질에 수반해 1년 만에 옷을 벗었다.

이후 야인으로 지내다가 김재박을 따라 2007년 LG에 복귀했지만, 하필이면 LG의 암흑기여서 2009년 김재박의 임기 만료와 수반해 또 다시 옷을 벗게 된 것.

4. 연도별 주요 성적 [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5
25
47
.170
8
0
1
1
3
6
2
1
.277
.188
1986
107
354
.280
99
21
(4위)
3
3
45
34
3
34
.381
.338
1987
103
357
.269
96
11
4
2
34
31
5
23
.339
.312
1988
101
352
.304
107
13
5
(1위)
1
43
31
10
41
.378
.375
1989
102
317
.300
95
12
5
(4위)
1
34
41
12
46
.379
.385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0
116
369
.279
103
16
8
(1위)
6
44
68
6
52
.415
.366
1991
105
383
.308
118
18
7
1
45
56
3
49
.399
.383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2
116
390
.300
117
24
3
8
52
49
6
42
.438
.364
1993
102
360
.300
108
14
4
1
31
35
9
32
.369
.355
1994
100
368
.321
(3위)
118
27
(3위)
3
11
51
49
8
36
.500
(3위)
.379
1995
84
241
.228
55
14
0
2
16
21
5
16
.311
.275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6
113
326
.267
87
14
3
5
23
38
3
17
.374
.301
1997
101
209
.239
50
8
2
5
17
21
1
6
.368
.260
KBO 통산
(13시즌)
1275
4073
.285
1161
192
48
47
438
480
73
395
.390
.346
[1] 2:1 트레이드 이튿날 열린 LG와의 인천 경기에서 연장 10회말 끝내기 안타를 친 뒤 LG 덕아웃을 향해 헬멧을 내동댕이쳐 간접적으로 이광환 감독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유명하다.[2] 이후 1999 시즌 직전 재정난으로 선수가 부족해진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윤덕규와 선수로 계약을 시도했고, 윤덕규 본인도 현역 복귀를 노려 입단 직전까지 갔다가 선수 등록 기한을 넘겨 무산됐다. 윤덕규는 현역으로 복귀할 줄 알고 몸까지 다 만들고 준비도 완벽하게 했는데도 무산되니 너무 아쉬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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