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후검모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위(衛)나라 17대 국군 위후 검모 衛侯 黔牟 | |||
희(姬) | |||
위(衛) | |||
검모(黔牟)[1] | |||
아버지 | 위선공(衛宣公) 희진(姬晉) | ||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년 | |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695년 ~ 기원전 688년 | |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위 혜공 4년(기원전 696년), 좌 공자 실, 우 공자 직이 위 혜공이 자신의 제자인 급자와 공자 수를 살해한 것에 한을 품고 들고 일어나 위 혜공을 폐위시키고 급자의 친동생인 공자 검모를 세웠다.
위후 검모 8년(기원전 688년), 제양공이 제후들을 거느리고 위(衛)나라를 쳐서 위후 검모를 내 쫓고 좌, 우공자를 처형했다. 위후 검모는 간신히 살아남아 주왕실로 달아났다. 그 뒤에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주나라에서 죽은 모양이다. 그리고 자손을 남기지 못했다고 한다. 적어도 위의공 즉위 이후에 죽은건 확실한데 그 이유는 위나라 사람들이 위 의공이 죽고 그 후손들은 제(齊)나라로 가거나[2] 위나라 사람들의 손이 죽어버리는 바람에 그 빈 자리에 위후 검모를 복위시키려 했으나 위후 검모가 이미 죽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기록이 그 증거다.
위후 검모 8년(기원전 688년), 제양공이 제후들을 거느리고 위(衛)나라를 쳐서 위후 검모를 내 쫓고 좌, 우공자를 처형했다. 위후 검모는 간신히 살아남아 주왕실로 달아났다. 그 뒤에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주나라에서 죽은 모양이다. 그리고 자손을 남기지 못했다고 한다. 적어도 위의공 즉위 이후에 죽은건 확실한데 그 이유는 위나라 사람들이 위 의공이 죽고 그 후손들은 제(齊)나라로 가거나[2] 위나라 사람들의 손이 죽어버리는 바람에 그 빈 자리에 위후 검모를 복위시키려 했으나 위후 검모가 이미 죽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기록이 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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