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개요 [편집]
2. 정통성 문제 [편집]
원나라는 1261년부터 요사와 금사의 편수 계획을 시작하여 1276년에는 남송의 수도 임안(臨安)을 정복함과 동시에 황실도서의 완전한 보존을 명령하면서 사서 편찬의 의지를 드러내었다. 그런데 1279년, 남송이 완전히 멸망한 이후 성리학적 관점에서 정통성 문제가 제기되어 계속 연기되었다. 원 조정에서는 다양한 주장으로 대립했는데,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송을 본기(本紀)에 기록하고 요와 금은 각각 재기(載記)에 기록해야 한다. 2. 요와 금을 북사(北史)로 편찬하고, 송은 송사(宋史), 남송사(南宋史)로 분찬해야 한다. |
이처럼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 가운데 결국 “삼국 모두에게 정통성을 부여하고 각각의 연호를 사용한다(三國各 與正統, 各繫其年號)”는 원칙이 확정되었다.
3. 구성 [편집]
본기(本紀) 30권, 지(志) 32권, 표(表) 8권, 열전(列傳) 45권, 국어해(國語解) 1권 합계 11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4. 의의와 평가 [편집]
편찬이 단기간에 이뤄져 사료의 부실함이 적지 않아 전반적인 평가는 부정적이다. 특히 요사는 사료의 내용, 체제, 용어 선택 등 총체적으로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이십사사(二十四史)에서 가장 수준이 떨어진다는 악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청나라의 고증학자 조익(趙翼)의 『이십사사차기』에서는 225년간 전개된 복잡다단한 역사적 사건과 많은 인물들을 간명하게 정리했다고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또한, 열전(列傳)의 입전이 제한적이다보니 그 부분을 극복하기 위해, 표(表)를 적극 활용해서 사건과 인물들을 누락 없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영위(營衛)」, 「날발(捺鉢)」, 「부족(部族)」, 「병위(兵衛)」 등 새롭게 설정한 지(志)에 대해서도, 다민족 사회의 특징과 거란 고유의 풍속을 드러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좋은 평가를 내렸다.
5. 한국어 번역본 [편집]
[1] 사업 당시 총감독을 맡은 직함이다.
라이선스를 별도로 명시하지 않은 문서는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문서의 기여자는 역사 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접두어의 N: - 나무위키 사용자, R: - 리그베다 위키의 사용자를 뜻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나무위키에서 동일한 문서의 역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