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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永興郡 / Yŏnghŭng County
1. 개요 [편집]
2. 역사 [편집]
한사군 시대에는 임둔군(臨屯郡) 화려현(華麗縣)이었다. 옥저의 영역이었고 고구려에 복속된 후에 장령진(長嶺鎭) 혹은 당문(唐文)·박평군(博平郡)이라 하였다. 진흥왕 때 신라가 차지했고 이후 남북국시대에 신라와 발해의 경계 지역이었다.
고려의 화주였다가, 조휘와 탁청의 반란에 의해 몽골 제국(원나라)으로 넘어가 쌍성총관부의 처소가 설치되는 등 이름이 쌍성으로 불렸으며 공민왕 때 되찾고 화령이 되었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고향. 이성계의 고향으로 이성계가 명나라에 국호로 쓰니마니 했던 곳(조선 VS 화령). 조선 왕조가 영원히 흥하라는 의미로 영흥이라고 붙였다고 한다. 이른바 흥왕의 땅(興王之地, 흥왕지지).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추존 환조)의 집으로 알려진 영흥본궁이 위치하고 있기도 하다.
이후 쟁쟁한 도시들이었던 안동, 강릉 등과 함께 대도호부로 지정되면서 지역거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1895년에는 23부제의 시행으로 함흥부 영흥군이 되었다.
함흥차사의 유래가 된 박순이 죽었다는 용흥강(영흥강)이 바로 여기에 있다. 때문에 원산만(元山灣)이 영흥만으로도 불리는 것. 북한 치하에서는 아래 사유로 졸지에 금야강, 금야만으로 불리고 있다.
현재 북한 행정구역상의 명칭인 금야는 김일성의 작명이었다. 1975년경 김일성이 조선왕조가 흥하라는 영흥이라는 지명의 유래를 듣고 당장 이름을 바꾸라고 지시했던 것. 검은 금이 많이 나고,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다 해서 금야(金野)군으로 바꾸었단다.김씨 왕조가 영원히 흥하라는 뜻으로 남겨두어도 됐을 법 헌데 고로 통일되면 이름을 즉시 갈아치울 가능성이 크다. 다만 다른 사례들만큼 불온한(?) 명칭은 아니기에 의외로 살아남을 수도 있지만, 하필이면 김일성이 지은 이름이기 때문에 바뀔 가능성이 높다.
넓은 영흥 평야가 펼쳐져 있고, 금야군은 2008년 기준으로 인구 21만으로 여전히 북한의 군 가운데 네임드의 인구를 자랑하고 있다.아마 이씨땅이라 승격을 안해주는걸꺼야 요덕군의 인구는 4만이다.
고려의 화주였다가, 조휘와 탁청의 반란에 의해 몽골 제국(원나라)으로 넘어가 쌍성총관부의 처소가 설치되는 등 이름이 쌍성으로 불렸으며 공민왕 때 되찾고 화령이 되었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고향. 이성계의 고향으로 이성계가 명나라에 국호로 쓰니마니 했던 곳(조선 VS 화령). 조선 왕조가 영원히 흥하라는 의미로 영흥이라고 붙였다고 한다. 이른바 흥왕의 땅(興王之地, 흥왕지지).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추존 환조)의 집으로 알려진 영흥본궁이 위치하고 있기도 하다.
이후 쟁쟁한 도시들이었던 안동, 강릉 등과 함께 대도호부로 지정되면서 지역거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1895년에는 23부제의 시행으로 함흥부 영흥군이 되었다.
함흥차사의 유래가 된 박순이 죽었다는 용흥강(영흥강)이 바로 여기에 있다. 때문에 원산만(元山灣)이 영흥만으로도 불리는 것. 북한 치하에서는 아래 사유로 졸지에 금야강, 금야만으로 불리고 있다.
현재 북한 행정구역상의 명칭인 금야는 김일성의 작명이었다. 1975년경 김일성이 조선왕조가 흥하라는 영흥이라는 지명의 유래를 듣고 당장 이름을 바꾸라고 지시했던 것. 검은 금이 많이 나고,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다 해서 금야(金野)군으로 바꾸었단다.
넓은 영흥 평야가 펼쳐져 있고, 금야군은 2008년 기준으로 인구 21만으로 여전히 북한의 군 가운데 네임드의 인구를 자랑하고 있다.
3.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편집]
파일:영흥군.jpg
여기에서는 광복 당시의 영흥군 현황에 대해 서술한다.
영흥군은 광복 당시 1읍 11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횡천면, 요덕면, 선흥면의 서부 산악지대를 제외한 나머지 읍면은 대체로 평탄하다.
여기에서는 광복 당시의 영흥군 현황에 대해 서술한다.
영흥군은 광복 당시 1읍 11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횡천면, 요덕면, 선흥면의 서부 산악지대를 제외한 나머지 읍면은 대체로 평탄하다.
- 영흥읍(永興邑)
- 관할 리: 남산(南山), 국봉(國峰), 남성암(南星巖), 내동(內洞), 도랑(都浪), 도정(都井), 문흥(文興), 반룡(盤龍), 사현(社峴), 삼사(三思), 상마산(上馬山), 상산(商山), 상태(上泰), 성북(城北), 신남(新南), 신흥(新興), 연동(硯洞), 영풍(永豊), 용남(龍南), 용연(龍淵), 용원(龍源), 운평(雲坪), 중마산(中馬山), 중면(中面), 중흥(中興), 팔정(八井), 필석(筆石), 하국사(下國寺), 하태(下泰), 형탄(荊灘)
- 원래 '홍인면(洪仁面)'과 '복흥면(福興面)'의 2개 면이었다가 1935년 홍인면이 영흥면으로 개칭되고, 1942년 복흥면을 통합해 영흥읍으로 승격되었다.
- 고령면(高寧面)
- 관할 리: 안동(安東), 가진(加進), 명장(明場), 모로(慕老), 무학(武鶴), 백안(白安), 비동(枇洞), 삼봉(三峯), 신성(新城), 신흥(新興), 연동(蓮洞), 연풍(淵豊), 이동(梨洞), 조산(藻山), 중흥(中興), 청학(靑鶴), 청흥(淸興), 풍동(豊東)
- 영흥군의 북부 해안지역.
- 덕흥면(德興面)
- 관할 리: 신풍(新豊), 광성(廣城), 구상(龜上), 구평(龜平), 구하(龜下), 금파원(金坡院), 내동(內洞), 농암(籠巖), 덕고개(德古介), 동한봉(東鷳鳳), 백남(白南), 백북(白北), 부남(富南), 신창(新昌), 신흥(新興), 쌍흥(雙興), 용천(龍川), 원흥(元興), 작동(鵲洞), 지인(智仁), 직동(直東), 직서(直西), 청남(淸南), 청동(淸洞), 청북(淸北), 풍성(豊城), 풍양(豊陽), 풍전(豊田), 한봉(鷳鳳), 화산(禾山)
- 선흥면(宣興面)
- 관할 리: 성(城), 검산(劍山), 남흥(南興), 문상(文上), 문흥(文興), 서상(西上), 신흥(新興), 연상(囦上), 완문(完文), 용남(龍南), 용반(龍盤), 용상(龍上), 용신(龍神), 용암(龍巖), 용연(龍淵), 용운(龍雲), 인풍(仁豊), 자산(慈山), 증하(曾下), 태명(太命), 평천(平川), 향산(香山), 향봉(香峰)
- 순령면(順寧面)
- 관할 리: 신정(新亭), 갈전(葛田), 경암(鯨巖), 광진(廣津), 능동(陵洞), 대흑석(大黑石), 덕양(德陽), 덕포(德浦), 두산(頭山), 석남(石南), 석북(石北), 성남(聖南), 소라(所羅), 소흑석(小黑石), 송전(松田), 송치(松峙), 쌍화산(雙花山), 용천(龍川), 원천(原川), 유남(柳南), 유북(柳北), 작산(鵲山), 정자(亭子), 주남(州南), 중양(中陽), 태평(太平), 풍남(豊南), 풍동(豊東), 풍양(豊陽), 풍흥(豊興), 화도(禾島), 흥남(興南)
- 억기면(憶岐面)
- 관할 리: 조양(朝陽), 구만(九灣), 남동(南東), 남서(南西), 남세(南細), 덕상(德上), 덕중(德中), 덕하(德下), 동세(東細), 미양(美陽), 봉양(鳳陽), 북세(北細), 삼기(三岐), 선흥(善興), 소산(昭山), 신성(新城), 신양(新陽), 신흥(新興), 양상(兩上), 양중(兩中), 양하(兩下), 오포(梧圃), 와우(瓦隅), 용호(龍湖), 율산(栗山), 인성(仁成), 인흥(仁興), 중남(中南), 치(峙), 탑산(塔山), 흥암(興巖)
- 용흥강과 덕지강이 합류하는 삼각주 지대에 위치한 면으로, 산이 없고 평야만 존재한다.
- 요덕면(耀德面)
- 관할 리: 중신(重新), 남산(南山), 대숙(大淑), 백동(柏洞), 북평(北坪), 성(城), 소숙(小淑), 용상(龍上), 용천(龍泉), 인상(仁上), 인흥(仁興), 입석(立石), 평전(坪田), 하신(下新), 화전(花田)
- 그 악명높은 요덕 수용소가 이곳에 존재한다.
- 인흥면(仁興面)
- 관할 리: 포중(浦中), 금피(⾦⽪), 남양(南陽), 내남(內南), 내평(內坪), 녹상(⿅上), 능동(陵洞), 동산(東⼭), 동소치(東蘇峙), 동양(東陽), 동원(東原), 동천(東川), 동평(東坪), 미흥(美興), 방축(防築), 상평(上坪), 선앙치(善仰峙), 성재(城岾), 성흥(城興), 송현(松峴), 연봉(連峯), 영풍(永豊), 왕상(旺上), 왕하(旺下), 용산(龍⼭), 용연(龍淵), 원거(院巨), 원동(元東), 원상(元上), 원서(元⻄), 은봉(銀峯), 의성(義成), 작동(芍東), 장재(長峙), 처인(處仁), 천동(泉洞), 칠동(七洞), 포상(浦上), 포하(浦下), 풍왕(豊旺), 향봉(香峰), 화성(化城), 화흥(化興)
- 북한 행정구역상 한때 존재했던 인흥군 소재지.
- 장흥면(長興面)
- 관할 리: 원하(院下), 동하(東下), 문성(文城), 봉남(鳳南), 봉양(鳳陽), 삼봉(三峯), 송산(松山), 신흥(新興), 연치(囦峙), 염교(濂郊), 원산(元山), 원상(院上), 인상(仁上), 인하(仁下), 인흥(仁興), 정동(正洞), 정동(鼎東), 정서(鼎西), 초상(草上), 초하(草下), 현흥(賢興)
- 진평면(鎭坪面)
- 관할 리: 진흥(鎭興), 건천(乾川), 신당(薪塘), 영하(永河), 용천(龍川), 우당(禹塘), 응봉(鷹峰), 제도(猪島), 진수(鎭岫), 천황(天皇), 평탄(坪灘), 한동(翰洞), 흥성(興城)
- 호도면(虎島面)[3]
- 관할 리: 방구미(芳久美), 갈고치(葛古峙), 구장(舊獐), 독구미(獨九味), 두무포(斗武浦), 모사도(茅沙島), 소응진(巢鷹津), 소포(蘇浦), 송빈(松濱), 신장(新獐), 용미(龍迷), 원상(原上), 원평(原平)
- 영흥군의 남부 해안지역. 광복 직후 독구미리(원상리 일부), 모사도리(송빈리 일부)가 신설되었다.
- 횡천면(橫川面)
- 관할 리: 대평(大坪), 덕평(德坪), 미로(美老), 미자아(美自牙), 산계(山界), 산성(山城), 상동산(上東山), 상평(上坪), 신흥(新興), 원흥(院興), 자아(自牙), 중동산(中東山), 중흥(中興), 천흥(泉興), 초평(草坪), 하동산(下東山), 하평(下坪)
- 북한 행정구역상 요덕군 소재지.
4. 고적 [편집]
5. 출신인물 [편집]
- 이성계 - 조선의 첫번째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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