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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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목록 [편집]
1.1. 사극 [편집]
사극에서는 하필 사극의 단골소재인 장희빈과 사도세자 사이에 끼어있는 존재인 까닭에 본인이 주역이 되기보다는 사도세자의 비극이나 정조와 관련해서 조연급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장희빈이 주인공인 사극에서 아역으로 등장하곤 한다. 신임사화와 이인좌의 난이 조선 붕당사에 있어서는 중요한 사건이지만 이상하게 극화가 잘 되지 않아 사극에서 외면받았기에 젊은 영조의 모습은 사극에서 잘 나오지 않았다가 2010년대가 되어서야 겨우 사극화가 이루어졌다.
사실 치세가 너무 길어서, 영조를 주인공으로는 사극을 만들기도 쉽지는 않을 듯하다. 만약 만든다면 《야인시대》와 《연개소문》의 선례를 따라 젊은 시절과 늙은 모습을 각각 다른 배우가 맡는 게 좋을 듯.
사실 치세가 너무 길어서, 영조를 주인공으로는 사극을 만들기도 쉽지는 않을 듯하다. 만약 만든다면 《야인시대》와 《연개소문》의 선례를 따라 젊은 시절과 늙은 모습을 각각 다른 배우가 맡는 게 좋을 듯.
- 《조선왕조 500년》 시리즈에서는 두 작품에 걸쳐 등장한다. 《인현왕후》에서는 어린 연잉군으로 등장했다. 갓난아기 때부터 희빈 장씨(전인화 분)에게 죽을 위기를 꽤 겪었어도 경종(김성환 분)과 사이는 좋은 것으로 나왔다.《인현왕후》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한 장면은 경종과 가위 바위 보를 하며 즐겁게 노는 모습이었다. 《한중록》에서는 즉위한 지 1년 뒤에 경종의 능을 참배하러 가는 장면으로 처음 등장했다. 생모가 무수리라는 것에 큰 컴플렉스를 느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아들 사도세자를 경종의 처소였던 저승전에 머물게 하였다. 그러나 결국 아들을 죽였고, 그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다. 다혈질적인 성격은 잘 묘사되었다.
- 2000년 KBS2 드라마《소설 목민심서(드라마)》- 김기현(성우)
- 최불암은 《안국동 아씨》에 이어 약 22년 만에 다시 영조 역을 맡았다. 유명한 강목 사건도 등장.#
- 다른 매체들과는 달리 여기서는 중년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운동을 좋아했던 사실을 반영했는지 격구를 하는 장면도 있을 정도.
- 김성겸은 《하늘아 하늘아》에 이어 약 18년 만에 다시 영조 역을 맡았다. 노론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들 사도세자를 죽인 뒤 세손에게 금등치사를 남긴다.
- 2010년 MBC 드라마 《동이》 - 이형석(아역), 이선호(청년)
- 실제 역사와 다르게 노론에게 휘둘리는 왕으로 나온다.
- 2014년 영화 《상의원》 - 유연석단, 이 영화 속 임금은 영조를 모델로 한 것이지 영조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아니다.
- 믿기지 않겠지만 송강호 배우 인생상 첫번째 상류층 캐릭터라고 한다. 그 전까지는 중하류층 인물들. 여기서 송강호는 굉장히 폭풍간지를 보여줬다. 사도세자(유아인 분)를 죽게 하면서 내가 임금이 아니었더라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라는 말로 왕좌가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보여줬다.
- 2018년 영화 《궁합》 - 김상경
1.2. 만화, 소설 [편집]
- 승은궁녀스캔들에서는 아직 연잉군이던 시절로 나온다. 여주인공 순심에게 관심이 많으며, 왕세제가 된 후에 형인 윤(경종)에게 복잡한 마음을 품고 있다. 윤이 죽은(걸로 위장하고 궁을 나온) 이후에 보위에 오른다.
- 밤을 걷는 선비에서는 잘못된 자식 교육으로 억압 받아온 아들을 이해하기는커녕 그런 아들이 점점 엇나가기 시작하자 자신의 권력과 왕실의 안위를 위해 귀를 이용해 사도세자를 죽이려하나 오래전부터 동질감을 느껴 동성애를 가져온 귀가 사도세자를 죽이지 못하고 사도세자를 흡혈귀로 만들어버리고 이에 분노한 영조는 귀와 사도세자를 같이 불태우게 되고 귀는 가까스로 살아남고 사도세자는 불에 타죽게된다. 더구나 이에대한 후회는커녕 그 잘못을 귀에게 돌리고 귀와 사생 결단을 내려는 모습을 보인다.
- 이별가:효장세자빈 이야기에서는 며느리 아라를 애지중지하며 아끼는 시아버지로 나온다.
1.3. 기타 설화 [편집]
- 친모인 숙빈 최씨를 왕비로 추존하려 했으나 부왕인 숙종의 '후궁을 중전으로 승격하지 말것'이라는 유언 때문에 성사하진 못했다. 이에 대한 설화가 있다. 영조가 잠행을 하면서 백성들을 만나보고 있는데 한 나무꾼이 나무를 팔면서 소령릉 근처에서 베어왔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숙빈 최씨는 후궁이므로 무덤 또한 원래는 소령원이라고 불러야 하는데 이 나무꾼은 무식해서(...) '주상 전하의 어머니의 무덤이니 왕릉이겠지'라고 여기고 소령'릉'이라고 말한 것. 영조는 "내 어머니의 무덤을 왕릉으로 불러 주다니!"라고 기뻐하며 그 나무꾼을 불러다가 소령원 수봉관 자리를 주었다고.
- 사람의 인생은 사주팔자에 달려 있다는 말에 대해 생각한 영조는 자신과 생년월일이 같은 사람을 찾아서 데려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얼마 뒤 농촌에서 꿀벌을 키우며 살아가는 한 노인이 어명을 받고 영조를 알현하게 되었다. 영조가 묻자 노인은 영조와 같은 해, 같은 월, 같은 날, 같은 시각에 태어났다고 말했다. 영조는 앞서 말한 사주팔자 이야기를 꺼내며 노인과 영조는 같은 사주인데 자신은 국왕이고 노인은 평범한 농민이라며 사주라는게 맞는지 틀렸는지 모르겠다고 말하자,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소인에겐 자식이 8명이니 이는 전하께서 다스리는 전국 8도와 같고, 소인이 키우는 벌통이 360개이니 이는 전하께서 다스리는 360개 고을의 갯수와 같으며, 그 벌통에 사는 벌이 700만 마리이니 이는 이 나라 백성들의 수와 같습니다. 이런 즉 사주라는 것이 과히 틀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이에 영조는 노인의 대답에 감탄하며 큰 상을 내리고 고향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 고려 말의 장수인 최영의 사당은 말에 탄 사람이 근처를 지나가면 갑자기 비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말에서 내려서 걸어가야 했다. 영조가 능행을 위해 지나가다가 비바람이 불자, 영조는 최영에게 '고려도 500년이나 지속되었거늘 뭘 더 바래서 이런 행패를 부리느냐!'라고 호통을 쳤다. 그러자 비바람이 그쳤다고 한다. 영조의 아버지인 숙종도 이런 일이 벌어지자 '최영 네놈이 현명하였다면 왜 고려가 망했겠느냐? 썩 물러가라!'라고 호통을 쳤는데 마찬가지로 비바람이 그쳤다는 야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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