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덕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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陽德郡 / Yangdŏk County
1. 개요 [편집]
평안남도에 있는 군으로 넓이는 1,395㎢(광복 직후) / 772㎢(현재). 현재 광복 직후 행정구역상 양덕군 지역의 인구는 9~10만 명 정도로 추측되며, 북한에서 쓰고 있는 행정구역을 기준으로는 인구가 6만 명 정도 되는 군이다. 군 남쪽으로는 산맥이 이어져서 황해도 곡산군과의 경계선을 이어주고 있다(이쪽의 평균 높이는 대략 900~1,000m 정도). 평라선(평원선)이 지나가며 중심지는 양덕역이 있는 양덕읍. 군청 소재지는 양덕읍과 동양면을 4번이나 오가다가 1921년 현재의 양덕읍으로 확정, 양덕읍을 신읍(新邑), 동양면을 구읍(舊邑)이라고 부른다. 양덕온천[1] 과 석탕온천 2개의 온천이 소재하고 있다.
1952년 군면리 대통합 당시 서북쪽의 5개 면을 잘라서 '신양군'을 신설했다. 참고로 이 신양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새로운 양덕군이라는 뜻이다.[2] 하지만 정작 '신양군'의 소재지는 광복 당시 성천군 지역에 있다.
여담으로 이 지역은 함경남도 지방과도 인접해 있어 동북 방언이 많이 배인 서북 방언을 사용한다고 한다.
1952년 군면리 대통합 당시 서북쪽의 5개 면을 잘라서 '신양군'을 신설했다. 참고로 이 신양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새로운 양덕군이라는 뜻이다.[2] 하지만 정작 '신양군'의 소재지는 광복 당시 성천군 지역에 있다.
여담으로 이 지역은 함경남도 지방과도 인접해 있어 동북 방언이 많이 배인 서북 방언을 사용한다고 한다.
2. 역사 [편집]
3.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편집]
- 양덕읍(陽德邑)
- 관할 리 : 용계(龍溪), 봉계(鳳溪), 세동(細洞), 수덕(樹德), 용흥(龍興), 운니(雲泥), 인평(仁平), 지수(智水), 창(倉), 청송(靑松), 태평(太平), 풍전(豊田)
- 군청 및 읍소재지는 용계리이다. 대탕지 및 소탕지온천이 있다. 원래 구룡면(九龍面)이었으나 1929년 낙천면(洛川面)을 흡수하면서 군청소재지가 되었고 1941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이리하여 '신읍(新邑)'이라고 한다.
- 대륜면(大倫面)
- 관할 리 : 사기(士基), 공진(孔眞), 괘송(掛松), 구룡(九龍), 수주(水注), 인흥(仁興), 통동(通洞)
- 동양면(東陽面)
- 관할 리 : 하석(下石), 상석(上石), 성북(城北), 수암(水巖), 신흥(新興), 용산(龍山), 지경(地境), 흘평(屹坪)
- 원래 군내면(郡內面)이었다가 1917년 양덕면으로 개칭되고, 1921년 군청이 구룡면(양덕읍)으로 이전하면서 다시 동양면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군청이 4차례나 바뀌다가 1929년에 구룡면(현 양덕읍)으로 정착하였다. 이리하여 '구읍(舊邑)'이라고 한다.
- 쌍룡면(雙龍面)
- 관할 리 : 평창(平倉), 관봉(冠峰), 반성(盤城), 북창(北倉), 용반(龍盤), 용봉(龍峰), 용전(龍田), 정옥(丁玉), 중(仲), 화락(化樂)
- 오강면(吳江面)
- 관할 리 : 창(倉), 등암(鄧巖), 봉암(鳳巖), 신봉(新峰), 신흥(新興), 쌍룡(雙龍), 연봉(蓮峰), 용담(龍潭), 월명(月明)
- 온천면(溫泉面)
- 관할 리 : 온정(溫井), 거차(巨次), 상국(上菊), 상신(上信), 상청(上淸), 은우(隱牛), 일양(日陽), 진석(眞石), 창(倉), 평암(平巖), 하국(下菊), 하청(河淸)
- 거차령을 통해 고원군과 이어지며, 석탕온천이 있다.
- 화촌면(化村面)
- 관할 리 : 백석(白石), 문암(文巖), 문흥(文興), 쌍평(雙坪), 여의(如意), 용흥(龍興), 장성(長星), 창개(昌介), 평곡(平谷), 풍계(楓溪), 화암(花巖)
4. 출신 인물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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