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유경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개요 [편집]
2. 행적 [편집]
심유경의 생애 전반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는 편이다.
명사에는 심유경이 시중의 무뢰한이라 되어있는데, 추정컨데 아마 한미한 출신이었던 것 같다.
임진왜란 발발 후 병부상서 석성의 추천으로 조선에 파견되어, 일본과의 평화 협상을 위해 고니시 유키나가와 접촉했다. 1593년에는 일본까지 건너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을 만나기도 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히데요시의 현실성 없는 요구 등으로 협상이 난항을 겪자 고니시와 공모해 문서를 조작하기로 했는데, 이를 사이쇼 조타이가 무시하고 명에서 보낸 문서 그대로 읽어버려 거짓이 들통났다는 식의 이야기가 꽤 유명하다. 허나 알고보면 이 스토리는 허구라고 한다. 실제로 협상한 건 맞지만 사이쇼 조타이 내용 등은 이후 일본에서 창작된 이야기일 확률이 높다고. 자세한 건 임진왜란 문서 참조.
결국 협상이 결렬되어 심유경은 처벌받을 뻔했으나 병부상서 석성의 도움으로 죄는 면했다. 그러나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일본으로 망명하려는 속셈으로 도망가다 경남 의령 부근에서 명나라 장수 양원에게 잡혀 황제와 조정을 기만한 죄로 참형에 처해진다.[2]
명사에는 심유경이 시중의 무뢰한이라 되어있는데, 추정컨데 아마 한미한 출신이었던 것 같다.
임진왜란 발발 후 병부상서 석성의 추천으로 조선에 파견되어, 일본과의 평화 협상을 위해 고니시 유키나가와 접촉했다. 1593년에는 일본까지 건너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을 만나기도 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히데요시의 현실성 없는 요구 등으로 협상이 난항을 겪자 고니시와 공모해 문서를 조작하기로 했는데, 이를 사이쇼 조타이가 무시하고 명에서 보낸 문서 그대로 읽어버려 거짓이 들통났다는 식의 이야기가 꽤 유명하다. 허나 알고보면 이 스토리는 허구라고 한다. 실제로 협상한 건 맞지만 사이쇼 조타이 내용 등은 이후 일본에서 창작된 이야기일 확률이 높다고. 자세한 건 임진왜란 문서 참조.
결국 협상이 결렬되어 심유경은 처벌받을 뻔했으나 병부상서 석성의 도움으로 죄는 면했다. 그러나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일본으로 망명하려는 속셈으로 도망가다 경남 의령 부근에서 명나라 장수 양원에게 잡혀 황제와 조정을 기만한 죄로 참형에 처해진다.[2]
3. 창작물에서 [편집]
[1] 경영첨주유격(京營添住遊擊)이라는 관직을 가칭하고 다녔기 때문에 조선왕조실록에는 그의 함자를 그대로 쓰기보다 관위인 유격(遊擊)으로 호칭하는 표현이 많다. 실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심유격(沈遊擊)은 그를 나타내며, 오자가 아님을 유념하자. 참고로 이 유격은 유격수, 유격훈련할 때 그 유격이 맞다.[2] 이후 양원은 1년 뒤 남원성 전투 패전의 죄를 물어 양호에게 잡혀 참수당한다.(...) 그리고 양호도 20년뒤 사르후 전투의 패전의 죄로 참수당한다(...)[3] 마법 장수는 넣어야 하는데 왜란 당시에 활약을 펼친 명나라 인들은 대부분 무인이였기에 이름이 알려진 인물 중 거의 유일하게 문관이 심유경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천하제일상 거상에서는 임진년에서 수백년 전의 인물인 제갈공명과 가공의 장수인 순비연이 마법 장수가 되었다.(...)[4] 영가의 난은 서진 시대 사건이다. 발배의 난(보바이의 난)과 혼동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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