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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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兴市 자싱시 / Jiāxīng Shì | |
청사 소재지 | 자싱시 난후구 광장로 1 |
대륙 | |
국가 | |
지역 | |
면적 | 4,275.05km² |
하위 행정구역 | 2구, 3현급 시 (市), 3현 |
인구 | 4,656,000명 |
방언 | 오어(吴语) |
시간대 | UTC+8 |
서기 | 장빙(张兵) |
시장 | 마우홍팡(毛宏芳) (대리) |
지역전화 | 0573 |
지역 번호판 | 浙F |
1. 개요 [편집]
중국 저장성의 지급시 중 하나. 중국 공산당을 정식으로 설립되게 한 중국 공산당 제1차 전국 대표 회의가 상하이에서 제지 당한 후, 자싱의 난후 (南湖) 상의 홍촨[1] (红船) 에서 회의를 끝 마치게 되는데, 이후 공산당 성지라고도 불리우게 되며 난후 옆에는 난후혁명기념관 (南湖革命纪念馆) 도 들어서 있다.
가흥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은데, 임시정부 주석 김구가 일제를 피해 이곳에서 수십일간 머물렀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한국, 중국 양국 정부와 효성그룹[2] 등 한국기업의 후원으로 김구 선생 피난처와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숙소가 복원 되어 있으며 1999년엔 강원도 강릉시와 자매도시가 되었다.
북쪽엔 쑤저우, 동쪽엔 상하이, 서쪽엔 항저우, 남동쪽으론 닝보와 항주만을 건너 맞대는 등 굵직굵직한 도시들과 붙어있으며 닝보를 빼면 차로 한 시간 이내에 위치해 있다. 지하철은 아직 없으나 건설 후 상하이와 지하철 연결 계획도 발표 하였다. 그외에 난퉁-자싱 고속선이 공사 중이다.
가흥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은데, 임시정부 주석 김구가 일제를 피해 이곳에서 수십일간 머물렀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한국, 중국 양국 정부와 효성그룹[2] 등 한국기업의 후원으로 김구 선생 피난처와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숙소가 복원 되어 있으며 1999년엔 강원도 강릉시와 자매도시가 되었다.
북쪽엔 쑤저우, 동쪽엔 상하이, 서쪽엔 항저우, 남동쪽으론 닝보와 항주만을 건너 맞대는 등 굵직굵직한 도시들과 붙어있으며 닝보를 빼면 차로 한 시간 이내에 위치해 있다. 지하철은 아직 없으나 건설 후 상하이와 지하철 연결 계획도 발표 하였다. 그외에 난퉁-자싱 고속선이 공사 중이다.
2. 행정구역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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