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칠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신문칠(申文七)
본관
생몰
황해도 평산군 세곡면 덕촌리[1]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목차
1. 개요2. 생애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신문칠은 1889년생이며 황해도 평산군 세곡면 덕촌리 출신이다. 그는 대한독립주비단에 가담한 뒤 단장 유상렬 등과 함께 1920년 12월부터 평산, 신계, 금천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했다. 1921년 7월 1일 일제 경찰의 추적을 피해 황해도 평산군 세곡면( 細谷面) 광평리(廣坪里) 산중에 숨어 있던 중, 호리오(堀尾) 순사부장 등 2명과 격투하다 체포되었다. 이후 독립주비단원 김면제(金冕濟) 외 54명이 체포되었다.

1921년 10월 6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해주형무소에서 1년 1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신문칠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인근의 광평리·생금리·운봉리·응촌리와 함께 평산 신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신도희도 이 마을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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