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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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山郡 / P'yŏngsan County
1. 개요 [편집]
2. 역사 [편집]
평산(平山)은 황해도 남동쪽에 위치한 지명으로 평주(平州)의 다른 이름이다.
해상리 회골에 있는 고회암용식 동굴이 구석기시대 유적으로 밝혀짐으로써, 구석기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한사군 시대에는 대방군(帶方郡) 제해현(提奚縣)이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영역으로서 처음 다지홀(多知忽) 또는 다지실(多知悉)이라고 불리다가 뒤에 대곡군(大谷郡)으로 편성되면서 개정되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국방 요충지로 부각되어 748년(경덕왕 7) 대곡성을 설치하였고, 757년(경덕왕 16)엔 영풍군(永豐郡)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일단 삼국사기 지리지의 기록상으로는 신라 9주 5소경 중 한주에 속했는데, 신라 후기인 782년(선덕왕 3)에 대곡성이 패강진(浿江鎭)으로 승격되었고, 이듬해부터 군주(軍主)가 두어져 예성강 이북, 대동강 이남지역을 관할하는 지방행정 및 군사의 중심지가 되었다. 패강진의 치소 위치에 대해서는 평양시, 봉산군 등 몇 가지 다른 설도 있지만 평산 위치설이 가장 정설인 상태다. 패강진의 위상을 한주와 구분되는 특수 행정구역으로 본다면 사실상 이 때 한주에서 독립하고 신라 서북지역 통치의 중심지가 된 것으로 보인다.
826년(흥덕왕 1)에는 300리에 달하는 패강장성을 축조했다.
904년 패강진 관하의 10여 주현이 궁예(弓裔)에게 항복한 후부터 평주(平州)로 부르게 되었다. 고려의 후삼국 통일에 큰 공을 세운 유금필(庾黔弼)·박수경(朴守卿) 등 4명의 호족이 이 곳 출신이다.
995년(성종 14)에 방어사(防禦使), 1018년(현종 9)에는 지주사(知州事)를 두었다. 1272년(원종 13)부터 잠시 복흥군(復興郡), 즉 배천에 예속되기도 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평산도호부(平山都護府)로 승격되었다.[1]
1733년(영조 9)에 태백산성이 개축되었는데, 4개의 몽성과 8개의 성문을 갖춘 요새로서 도호부사가 수성장을 겸하는 외에 별장과 승장을 따로 두었다.
1895년(고종 32)의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평산군으로 고쳐졌다. 이 곳은 전통적으로 유림의 조직이 강력한 곳이었으며, 1896년에는 유인석(柳麟錫)의 의병부대와 연계되어 일부는 제천에서, 일부는 황해도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에는 박정빈을 대장으로 하는 평산의병이 조직되어 평산·배천·연안 등지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3.1운동 때에는 천도교인 외에도 유림이 중심이 되어 만세시위를 주도했던 특색을 보여주었다.
근대의 인물로는 주비단(籌備團)을 조직해 활동한 바 있는 서의배·유상렬·조창선(趙昌善) 등과 이완용(李完用)의 암살을 시도했던 정의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등이 있다.[2]
해상리 회골에 있는 고회암용식 동굴이 구석기시대 유적으로 밝혀짐으로써, 구석기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한사군 시대에는 대방군(帶方郡) 제해현(提奚縣)이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영역으로서 처음 다지홀(多知忽) 또는 다지실(多知悉)이라고 불리다가 뒤에 대곡군(大谷郡)으로 편성되면서 개정되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국방 요충지로 부각되어 748년(경덕왕 7) 대곡성을 설치하였고, 757년(경덕왕 16)엔 영풍군(永豐郡)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일단 삼국사기 지리지의 기록상으로는 신라 9주 5소경 중 한주에 속했는데, 신라 후기인 782년(선덕왕 3)에 대곡성이 패강진(浿江鎭)으로 승격되었고, 이듬해부터 군주(軍主)가 두어져 예성강 이북, 대동강 이남지역을 관할하는 지방행정 및 군사의 중심지가 되었다. 패강진의 치소 위치에 대해서는 평양시, 봉산군 등 몇 가지 다른 설도 있지만 평산 위치설이 가장 정설인 상태다. 패강진의 위상을 한주와 구분되는 특수 행정구역으로 본다면 사실상 이 때 한주에서 독립하고 신라 서북지역 통치의 중심지가 된 것으로 보인다.
826년(흥덕왕 1)에는 300리에 달하는 패강장성을 축조했다.
904년 패강진 관하의 10여 주현이 궁예(弓裔)에게 항복한 후부터 평주(平州)로 부르게 되었다. 고려의 후삼국 통일에 큰 공을 세운 유금필(庾黔弼)·박수경(朴守卿) 등 4명의 호족이 이 곳 출신이다.
995년(성종 14)에 방어사(防禦使), 1018년(현종 9)에는 지주사(知州事)를 두었다. 1272년(원종 13)부터 잠시 복흥군(復興郡), 즉 배천에 예속되기도 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평산도호부(平山都護府)로 승격되었다.[1]
1733년(영조 9)에 태백산성이 개축되었는데, 4개의 몽성과 8개의 성문을 갖춘 요새로서 도호부사가 수성장을 겸하는 외에 별장과 승장을 따로 두었다.
1895년(고종 32)의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평산군으로 고쳐졌다. 이 곳은 전통적으로 유림의 조직이 강력한 곳이었으며, 1896년에는 유인석(柳麟錫)의 의병부대와 연계되어 일부는 제천에서, 일부는 황해도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에는 박정빈을 대장으로 하는 평산의병이 조직되어 평산·배천·연안 등지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3.1운동 때에는 천도교인 외에도 유림이 중심이 되어 만세시위를 주도했던 특색을 보여주었다.
근대의 인물로는 주비단(籌備團)을 조직해 활동한 바 있는 서의배·유상렬·조창선(趙昌善) 등과 이완용(李完用)의 암살을 시도했던 정의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등이 있다.[2]
3. 지리 [편집]
4. 교통 [편집]
5. 산업 [편집]
주요 농산물은 옥수수이고, 그 밖에 벼·콩 등이 생산된다. 과일은 사과가 많이 생산되고, 배·복숭아 등도 재배되고 있으며, 남부의 주포리·봉탄리 일대에서는 밤을 가꾸어 ‘평양밤’으로 거래되고 있다. 또 ‘평산대추’는 유명한 특산물이다.
지하자원이 풍부해, 임산리 부근에서는 슬레이트, 봉천리 일대에서는 대리석·화강암 등이 많이 채굴되고 있으며, 군의 여러 곳에서 나는 형석은 질과 양에서 세계적인 자랑거리로 되어 있다.
북한의 핵개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곳 중 하나로 북한 최대의 우라늄 광산 중 하나가 군에 있다. 우라늄 광산 옆에 있는 정련정광 공장은 북한 최대의 우라늄 정광 시설이다.
지하자원이 풍부해, 임산리 부근에서는 슬레이트, 봉천리 일대에서는 대리석·화강암 등이 많이 채굴되고 있으며, 군의 여러 곳에서 나는 형석은 질과 양에서 세계적인 자랑거리로 되어 있다.
북한의 핵개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곳 중 하나로 북한 최대의 우라늄 광산 중 하나가 군에 있다. 우라늄 광산 옆에 있는 정련정광 공장은 북한 최대의 우라늄 정광 시설이다.
6. 문화재 [편집]
- 태백산성
일찍이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에 해당되었던 관계로 이 지역에는 평산면 산성리에 태백산성(太白山城), 마산면 다보산에 자모산성(慈母山城), 서봉면 철봉리에 철봉산성(鐵峰山城) 등의 성지가 있으며, 성내에는 당시의 시설물인 장대(將臺)·문루·군기고·창고지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특히 태백산성은 대곡성·평산산성·성황산성 등으로 불리다가 조선 영조 때 개축된 것인데, 성내에는 태사사(太師祠)[4]라는 사당이 있는 등 매우 큰 규모에 속하는 산성으로 주목된다. 태사사는 신숭겸(申崇謙)·유금필(庾黔弼)·복지겸(卜智謙)·배현경(裵玄慶) 등의 신상(神像)을 모신 곳으로, 고려 때 창건되었다가 1796년(정조 20)에 사액되었다.
- 관북사, 북수사
원효가 창건했다는 인산면 기린리 성적산에 관북사와, 평산면 은담리 방원산에 있는 북수사(北岫寺)가 있다. 또한 서봉면 월봉리에서는 고려 후기에 속하는 종(鐘)이 출토된 바 있다. 금암면 제궁리에는 10∼11세기에 해당하는 청자도요지가 있다.
- 동양서원, 구봉서원
동양서원(東陽書院)[5]과 구봉서원(九峰書院)이 있다. 평산온천 부근에는 고려 말의 신안이 종신하도록 이 곳에서 머물며 조선에서 보내는 녹봉을 받지 않았다는 내용의 배록동유허비(排祿洞遺墟碑)가 세워져 있다.
- 멸악산
멸악산에는 주천자(周天子) 또는 여진(女眞) 금황제(金皇帝)의 시조묘라고도 전하는 천자묘(天子墓)가 있다. 멸악산은 멸악산식물보호구로 지정되어 있으며, 신갈나무를 비롯해 북부광엽수림(北部廣葉樹林)과 신갈나무가 섞인 혼합림으로 되어 있다.
7. 출신 인물 [편집]
8. 여담 [편집]
- 평산 신씨의 본관이다.
9.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편집]
광복 당시 1읍 13면
- 남천읍(南川邑)
- 관할 리 : 신남천(新南川), 갈탄(葛灘), 남천(南川), 노동(盧洞), 두무(斗武), 보산(寶山), 산막(山幕), 삼가(三佳), 수구(水口), 양암(陽巖), 운천(雲川), 월하(月下)
- 고지면(古之面)
- 관할 리 : 서오(書梧), 금릉(金陵), 달성(達城), 대룡(大龍), 봉암(鳳巖), 세관(洗冠), 송정(松亭), 완정(浣亭)
- 금암면(金巖面)
- 관할 리 : 한포(汗浦), 강정(江亭), 대촌(垈村), 부정(斧亭), 용촌(龍村), 재궁(齋宮), 저탄(猪灘), 필대(筆垈), 화암(花巖)
- 마산면(馬山面)
- 관할 리 : 한촌(漢村), 가동(稼洞), 간평(間坪), 당후(堂后), 대경(大慶), 도평(桃坪), 서촌(西村), 석수(石手), 성기(聖基), 은촌(隱村), 입암(立巖), 주답(注畓), 천초(泉草)
- 이승만이 이 곳(대경리) 출신이다.
- 문무면(文武面)
- 관할 리 : 문구(文區), 고산(孤山), 구손(舊孫), 금은(金銀), 대택(大澤), 물안(物安), 미로(未老), 양어(養魚), 자창(自昌), 재명(才明), 지당(池塘), 창평(昌坪), 청수(淸水), 한정(寒井), 화랑(花浪), 화원(花院)
- 북한 행정구역상 린산군 소재지.
- 상월면(上月面)
- 관할 리 : 신촌(新村), 계동(桂洞), 녹탄(綠灘), 대촌(大村), 동막(東幕), 석교(石橋), 용수(龍水), 하월(下月)
- 서봉면(西峰面)
- 관할 리 : 당우(塘隅), 만탄(晩灘), 범안(泛雁), 봉동(鳳洞), 삼산(三山), 상령(商嶺), 어사천(御史川), 용두(龍頭), 월봉(月峰), 장륙당(藏六堂), 주촌(舟村), 진포(進浦), 철봉(鐵峰), 해수(海水)
- 세곡면(細谷面)
- 관할 리 : 누천(漏川), 광평(廣坪), 군동(群洞), 덕촌(德村), 도천(道川), 석교(石橋), 생금(生金), 수동(修洞), 오포(梧浦), 운봉(雲峰), 은동(隱洞), 응촌(鷹村), 적성(赤城), 죽동(竹洞), 진보(眞寶)
- 신암면(新巖面)
- 관할 리 : 배천(白川), 가정(柯亭), 검현(劒峴), 남산(南山), 당평(堂坪), 대촌(大村), 문림(文林), 반월(半月), 성북(城北), 수회(水回), 원전(院田), 월봉(月峰), 장동(長洞), 재동(齋洞), 주상(舟上), 청룡(靑龍), 태봉(台峰)
- 안성면(安城面)
- 관할 리 : 물개(物開), 당인(唐仁), 덕암(德巖), 마유(馬踰), 발참(撥站), 설현(雪峴), 속실(粟實), 양촌(陽村), 유천(楡川), 제암(祭巖), 총수(葱秀)
- 용산면(龍山面)
- 관할 리 : 석탄(石灘), 광암(廣巖), 노동(老洞), 두동(杜洞), 미수(眉秀), 삼봉(三峰), 석사(石沙), 평촌(坪村), 화촌(花村)
- 인산면(鱗山面)
- 관할 리 : 기린(麒麟), 강도(綱桃), 건천(乾川), 낙촌(洛村), 대미(大美), 수마(水麻), 주련(住輦), 진석(眞石), 진천(眞川), 토옥(土沃), 평촌(坪村), 허사(許沙)
- 적암면(積巖面)
- 관할 리 : 온정(溫井), 갈산(葛山), 녹동(祿洞), 면곡(綿谷), 세동(細洞), 송암(松巖), 신답(新畓), 위동(位洞), 한정(寒井), 행정(杏亭)
- 북한 행정구역상 봉천군 소재지. '봉천'군의 '천(泉)'이 온정리에 있는 '학래온천(鶴來溫泉)'에서 딴 것이다.
- 평산면(平山面)
- 관할 리 : 은담(隱潭), 단구(丹邱), 빙고(氷庫), 산성(山城), 전도(傳道), 직하(稷下), 화산(花山)
[1] 『세종실록』 지리지에 의하면 15세기 중엽의 인구는 총 2,130호 6,323명으로 해주에 버금가는 큰 고을이었다.[2] 단, 현재 북한 행정구역 기준으로는 봉천군.[3] 『고려사』 병지(兵志)에서는 개경에서 서북으로 나가는 금교도(金郊道) 관하의 16개 우역(郵驛) 가운데 금암·보산·안성·반석·기린·온천 등의 6개 역이 이 곳에 있었다고 전하고 있으며, 금암·보산·안성의 3개 역은 역정(驛丁) 75명씩을 배치한 일과역(一科驛), 즉 1등역에 속하는 곳이었다고 한다.[4] 6·25전쟁 때 불탔으나 지금은 복구되었다.[5] 6·25전쟁 때 불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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