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섭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신무섭은 강원도 회양군 출신으로 알려졌지만 출생년도는 알 수 없다. 그는 1896년 1월 민용호 의병장의 의병대가 강원도 원주에서 통천을 거쳐 회양에 이르자 이정재(李正宰) 등과 함께 군사 130여 명을 모아 의진에 참여하여 총독장(總督將)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1896년 2월 6∼7일 안변의 선평전투에서 원산(元山)으로 북진 중이던 적군을 맞아 130여 명을 부상시키고, 일본군 장교 2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또한 1896년 3월 8일에는 후군장(後軍將)직을 맡아 강우서(姜禹瑞)·민동식·전치운(全致雲)[1] 등과 함께 의진을 이끌고 묵호에 나타난 일본군 선박 3척을 격침시켰고, 동년 4월에는 성익현·박봉구(朴鳳九)·민동식 등과 함께 인제 방면에서 진격해 오는 일본군과 교전을 벌였다.
그러나 1896년 8월 10일 함흥에 주둔하던 중 일본군의 습격으로 18명의 의병들과 함께 체포된 뒤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신무섭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또한 1896년 3월 8일에는 후군장(後軍將)직을 맡아 강우서(姜禹瑞)·민동식·전치운(全致雲)[1] 등과 함께 의진을 이끌고 묵호에 나타난 일본군 선박 3척을 격침시켰고, 동년 4월에는 성익현·박봉구(朴鳳九)·민동식 등과 함께 인제 방면에서 진격해 오는 일본군과 교전을 벌였다.
그러나 1896년 8월 10일 함흥에 주둔하던 중 일본군의 습격으로 18명의 의병들과 함께 체포된 뒤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신무섭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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