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중귀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후진 제2대 황제 少帝 | 소제 | |
없음 | |
없음 | |
정왕(鄭王) → 제왕(齊王) → 부의후(負義侯) | |
석(石) | |
중귀(重貴) | |
천복(天福, 942년 ~ 944년) 개운(開運, 944년 ~ 946년) | |
생몰 기간 | |
재위 기간 | |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914년에 석경당의 형제인 석경유(石敬儒)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석경유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석경당이 조카를 데려다 키웠다. 석경당은 대부분의 아들들이 후진 건국을 전후로 요절하였고, 다른 아들인 석중예(石重睿)가 너무 어려서 석중귀를 후계자로 삼았다.
942년, 석경당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지만 거란에 대해 손자라 할 뿐 신하라 하지 않고, 보내던 조공까지 끊어버리는 강경 일변도로 나오며 거란에 적대 노선을 표명했다. 특히 요 태종이 조공을 끊은 것에 대해 추궁하는 사신을 보냈으나 석중귀는 사신을 폭행하고 추방했다. 이 탓에 대노한 요 태종은 동맹을 파기한 뒤 10만의 대군을 이끌고 남하해왔다. 재위 초에 거란군의 침략을 2번이나 막아내며 나름 버텨냈지만 946년, 다시 거란군이 침략하여 후진의 군대를 격파하고 끝내 수도 개봉을 함락시킨 뒤 석중귀를 포로로 잡아 끌고 갔고, 이로 인해 후진은 단명하고 말았다. 요에 포로로 잡힌 이후에 석중귀는 부의후(負義侯)에 봉해졌으며 18년 후인 964년, 요나라 건주에서 사망했다.
942년, 석경당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지만 거란에 대해 손자라 할 뿐 신하라 하지 않고, 보내던 조공까지 끊어버리는 강경 일변도로 나오며 거란에 적대 노선을 표명했다. 특히 요 태종이 조공을 끊은 것에 대해 추궁하는 사신을 보냈으나 석중귀는 사신을 폭행하고 추방했다. 이 탓에 대노한 요 태종은 동맹을 파기한 뒤 10만의 대군을 이끌고 남하해왔다. 재위 초에 거란군의 침략을 2번이나 막아내며 나름 버텨냈지만 946년, 다시 거란군이 침략하여 후진의 군대를 격파하고 끝내 수도 개봉을 함락시킨 뒤 석중귀를 포로로 잡아 끌고 갔고, 이로 인해 후진은 단명하고 말았다. 요에 포로로 잡힌 이후에 석중귀는 부의후(負義侯)에 봉해졌으며 18년 후인 964년, 요나라 건주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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