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봉화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서봉화(徐鳳化)
이명
서중각(徐仲珏)
본관
생몰
함경남도 단천군 복귀면 오몽동[1]
사망지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목차
1. 개요2. 생애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천도교 신자.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서봉화는 1866년 3월 20일 함경남도 단천군 복귀면 오몽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천도교 신자였으며, 1919년 3월 10일 천도교도들이 최제우 순교 기념일을 기해 독립만세시위를 벌일 때 가담했다. 그는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용현리와 하서리를 거쳐 헌병대로 행진했는데, 이때 시위 군중이 1,000명으로 늘어났다. 시위대가 일제의 식민통치를 규탄하며 독립만세를 고창하자, 일본 헌병이 출동하여 강제로 해산시키려 들었다. 이때 서봉화가 헌병대장을 향해 호통을 쳤다.
"이놈들아! 내 나라를 내놓아라."

그러자 헌병대장은 태극기를 든 그의 어깨를 군도로 내리쳤다. 이에 서봉화는 가슴을 헤치고 다시 외쳤다.
"이놈아, 찌를 테면 찔러 보아라!"

헌병대장은 군도로 서봉화의 배를 찔러 쓰러뜨렸다. 서봉화는 배를 찔러 죽어가면서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가 끝내 사망했다. 그 광경을 지켜본 군중은 격분해 헌병대로 달려들어갔고, 헌병대는 그들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이로 인해 서봉화 외에 염석하, 염석한, 박홍선(朴弘善), 이영호(李永浩), 김상갑(金尙甲), 이종환(李鍾煥) 등 7명이 사살당하고 8명이 부상당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서봉화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이천 서씨 집성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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