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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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설명 [편집]
3. 비판 [편집]
하지만 단재는 삼조선이 존재했었다는 실증 근거를 조선상고사에서는 제시하지 않고 전후삼한고에서 그 근거를 제시하였는데, 그 근거가 관련 사서의 한문을 오독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해당 구절을 보면,
해당 구절을 보면,
自始全燕時嘗略屬眞番朝鮮 - 《사기》 조선열전
(일찍이 연나라의 전성시대에 진번과 조선을 침략하여 복속시켰다.)
이라고 언급되어 있는데, 여기에 붙은 주석으로
"燕嘗略二國以屬己也"
(연나라가 일찍이 두 나라를 공략하여 복속시켰다)
4. 세종대왕이 언급한 삼조선 [편집]
... 본래 삼조선(三朝鮮)의 구도(舊都)이다. 당요(唐堯) 무진년에 신인(神人)이 박달나무 아래에 내려오니, 나라 사람들이 〈그를〉 세워 임금을 삼아 평양에 도읍하고, 이름을 단군(檀君)이라 하였으니, 이것이 전조선(前朝鮮)이요,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상(商)나라를 이기고 기자(箕子)를 이 땅에 봉하였으니, 이것이 후조선(後朝鮮)이며, 그의 41대 손(孫) 준(準) 때에 이르러, 연(燕)나라 사람 위만(衛滿)이 망명(亡命)하여 무리 천여 명을 모아 가지고 와서 준(準)의 땅을 빼앗아 왕검성(王儉城)【곧 평양부(平壤府)이다.】에 도읍하니, 이것이 위만 조선(衛滿朝鮮)이었다. 그 손자 우거(右渠)가 〈한나라의〉 조명(詔命)을 잘 받들지 아니하매, 한나라 무제(武帝) 원봉(元封) 2년에 장수를 보내어 이를 쳐서, 진번(眞蕃)·임둔(臨屯)·낙랑(樂浪)·현도(玄菟)의 4군(郡)으로 정하여 유주(幽州)에 예속시켰다. 반고(班固)의 《전한서(前漢書)》에 이르기를, “현토와 낙랑은 본래 기자(箕子)를 봉한 곳인데, 소제(昭帝) 시원(始元) 원년에 임둔·낙랑으로써 동부 도호(東府都護)를 설치하였다.” 하였고, 《당서(唐書)》에 이르기를, “변한(卞韓)은 낙랑 땅에 있다.” 하였다.
5. 같이보기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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