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문사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扶餘文思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편집]

태자의 아들 문사(文思)가 왕의 아들 융(隆)에게 이르기를
“왕께서는 태자와 함께 나가버렸고, 숙부는 자기 마음대로 왕 노릇을 하고 있으니 만일 당나라 군사가 포위를 풀고 가버리면 우리들이 어떻게 안전할 수 있겠는가?”라 하고,
마침내 측근들을 데리고 밧줄을 타고 성을 빠져 나가고 백성들도 모두 그를 뒤따르니, 태(泰)가 이를 만류하지 못하였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

백제의 왕족. 의자왕의 손자로 부여융 또는 부여효의 아들이다.

2. 생애 [편집]

660년 사비성 전투에서 부여융과 함께 성을 빠져나와 나당연합군에 항복했다. 당시 의자왕은 태자 부여효와 함께 웅진성으로 파천한 상태였고, 2번째 왕자인 부여태는 칭왕해서 사비성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부여태는 부여융과 부여문사 및 백성들의 이탈을 막지 못했고, 결국 소정방의 당나라군이 사비성에 올라와 깃발을 세우자 버티지 못하고 항복하게 된다.

3. 기타 [편집]

  • 삼국사기 백제본기 660년조에서는 부여효가 태자로 나오지만, 중국 측 기록에서는 부여융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1]
[1] 구당서 소정방전에는 '적손문사(嫡孫文思)', 신당서 소정방전에는 의자왕의 손자(義慈孫), 자치통감에서는 (부여)융의 아들 문사(隆子文思)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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