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야고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拔野古
Bayarïqu
철륵의 부족 중 하나이다. 발야고(拔野固), 발예고(拔曳固)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고비사막 북쪽에 정착해 살았다. 거주지가 중앙으로 집중되지 않고 여러 군데로 퍼져있었는데 범위가 약 1,000리 정도 되었다. 현재의 몽골공화국 케룰렌 강과 내몽골자치구 후룬 호이다. 복골의 동쪽 경계에 위치하며 정예 병사는 10,000명 정도 되었다. 주로 유목을 통해 생계를 유지했다. 땅은 초원 지대여서 명마를 기르기 유용했으며, 철을 생산할 수 있어 유목민이 대부분 부유했다. 발야고는 사냥도 즐기며 농사도 조금 했다. 나무를 타고 얼음 위에서 사슴을 잡기도 했다. 풍습은 대충 철륵과 유사하였으나 언어가 사뭇 달랐다. 발야고가 당에 조공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716년, 반란을 일으켰다가 돌궐의 묵철가한에게 대패했다. 하지만 묵철을 살해하고 그 수급을 당나라에 보낸 후인 720년부터 당나라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Bayarïqu
철륵의 부족 중 하나이다. 발야고(拔野固), 발예고(拔曳固)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고비사막 북쪽에 정착해 살았다. 거주지가 중앙으로 집중되지 않고 여러 군데로 퍼져있었는데 범위가 약 1,000리 정도 되었다. 현재의 몽골공화국 케룰렌 강과 내몽골자치구 후룬 호이다. 복골의 동쪽 경계에 위치하며 정예 병사는 10,000명 정도 되었다. 주로 유목을 통해 생계를 유지했다. 땅은 초원 지대여서 명마를 기르기 유용했으며, 철을 생산할 수 있어 유목민이 대부분 부유했다. 발야고는 사냥도 즐기며 농사도 조금 했다. 나무를 타고 얼음 위에서 사슴을 잡기도 했다. 풍습은 대충 철륵과 유사하였으나 언어가 사뭇 달랐다. 발야고가 당에 조공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716년, 반란을 일으켰다가 돌궐의 묵철가한에게 대패했다. 하지만 묵철을 살해하고 그 수급을 당나라에 보낸 후인 720년부터 당나라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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