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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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광주광역시 출신 독립운동가, 박봉석2. 진도군 출신 독립운동가, 박봉석3. 괴산군 출신 독립운동가, 박봉석

1. 광주광역시 출신 독립운동가, 박봉석 [편집]

성명
박봉석(朴奉石)
생몰
전라도 광주목 도천면 수박치리
사망지
대구형무소
위패
추서
건국훈장 독립장

박봉석은 1885년생이며 전라도 광주목 도천면 수박치리 출신이다. 그는 1908년 11월 안규홍 의병장의 부대에 들어가 포군(砲軍)의 직책을 가지고 50여 명의 의병과 함께 총으로 무장, 보성, 장흥, 순천 등지에서 일본인 관헌을 습격했다. 그리고 1909년 5월 18일에는 부하 7명을 대동하고 보성군 율어면 유치에서 복내장(福內場)의 물품을 사고 있던 일본군 2명과 한인 통역 1명을 만나 교전한 끝에 일본군 병사 한 명에게 중상을 입히고 총 2정과 군도를 노획했다. 그러나 남한 대토벌 작전으로 인해 1909년 9월 24일 일본군에게 체포되었고, 1910년 2월 7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폭동 및 살인, 강도 혐의로 교수형을 언도받고 항소했지만 3월 22일 대구공소원과 5월 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고 1910년경 대구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박봉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국립서울현충원 무후선열에 그를 기리는 위패를 세웠다.

2. 진도군 출신 독립운동가, 박봉석 [편집]

성명
박봉석(朴鳳石)
이명
박봉윤(朴鳳尹), 박일(朴逸), 박적(朴赤)
생몰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면 교동리
사망지
오사카형무소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박봉석은 1903년 8월 24일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면 교동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일본으로 유학갔고 1928년 11월경 일본 오사카에서 신간회 오사카지회 간사로 활동했으며, 김지배(金地培)·박종협·김우성(金又星) 등과 함께 조선적화당(朝鮮赤化黨)을 조직했다. 이후 국내로 들어와 서울, 인천, 개성 등지에서 조직을 확대하다가 1929년 1월 체포되었고, 1929년 10월 오사카지방재판소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오사카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2년 4월 16일에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박봉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1년에 그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여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3. 괴산군 출신 독립운동가, 박봉석 [편집]

성명
박봉석(朴奉石)
생몰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주진리
사망지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대통령표창

박봉석은 1877년 3월 5일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주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전국 각지에서 3.1 운동이 전개되자 괴산군 연풍면에서도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심하고 3월 28일 연풍면에 있는 보통학교 앞에서 조세기(趙世基)와 같이 주민들을 규합하여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4월 22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및 소요 혐의로 태형 90도에 처해졌다. 이후 괴산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32년 5월 2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박봉석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8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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