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맹우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분류
박맹우의 역임 직위 |
[ 펼치기 · 접기 ] |
출생 | |||||||||||||||||||
본관 | |||||||||||||||||||
재임기간 | 제3-5대 울산광역시장 | ||||||||||||||||||
2002년 7월 1일 ~ 2014년 3월 31일 | |||||||||||||||||||
제19-20대 국회의원 | |||||||||||||||||||
2014년 7월 31일 ~ 2020년 5월 29일 | |||||||||||||||||||
외부 링크 | |||||||||||||||||||
[ 펼치기 · 접기 ]
| |||||||||||||||||||
1. 개요 [편집]
2. 상세 [편집]
울산삼호초등학교, 울산제일중학교, 경남고등학교[5], 국민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내무부, 총무처, 경상남도청, 울산광역시청 등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주요 직책으로는 관선 경상남도 함안군 군수, 울산광역시 동구 부구청장 등이 있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울산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민주노동당 송철호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2005년 영호남시도지사협의회 회장에 선출되었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울산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민주노동당 노옥희 후보를 꺾고 재선되었다.
그리고 또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로 울산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민주노동당 김창현 후보를 꺾고 당선되면서 3선에 성공하였다. 이후 2012년 광역시장협의회 회장에 선출되었다.
2014년 3월 31일 상반기 재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울산광역시장직을 사임하였다. 그런데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치러진 새누리당의 울산광역시장 후보 경선에서 김기현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했다는 점, 김기현과 박맹우 간 자리 맞바꾸기라는 점 등의 비판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김기현이 울산광역시장 선거에서 당선되고 박맹우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울산광역시 남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무소속 송철호 후보를 꺾고 당선됨으로써 자리 맞바꾸기가 이루어졌다.
약 11년 10개월동안 울산광역시의 시장으로 재직한 대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울산에서 3선 시장은 처음이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박맹우를 울통령이라고 부르는 모양. 부임 이후 시에 만연하던 정경유착을 적극적으로 뿌리뽑기 위해 노력한 점, 울산 12경 지정, 울산시티투어, 고래박물관 개관, 태화강 대숲공원 조성 등을 통해 공업도시로만 알려졌던 울산의 이미지를 다양한 방향으로 개선시킨 점, 그리고 결정적으로 공업으로 인해 오염된 도시를 되살려 환경생태도시로 변화시킨 점에서 시민들에게 높게 평가받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울산의 젖줄이라고 불리는 태화강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수질오염이 매우 심각했었는데, 박맹우 시장이 취임한 후 3년만에 수영대회를 개최할 정도로 수질이 대대적으로 개선되었다. 실제로 박 시장의 시정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정치 성향이나 박맹우라는 정치인에 대한 개인적 호불호을 막론하고 여전히 호의적인 편이라고 한다.
2016년 한 해동안 새누리당의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기간에는 이철우가 자유한국당 사무총장이 되었다가 선거 이후 자유한국당 사무총장으로 재임명되었다.
전임 사무총장이었던 한선교가 건강 악화로 사무총장직을 사퇴하자 2019년 6월 28일 자유한국당 사무총장에 임명됐다. 20대 국회들어 총 3번이나 사무총장을 역임한 셈.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울산 남 을 경선에서 김기현 전 시장에 밀렸고, 페이스북에 정계 은퇴를 암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다만 차기 울산광역시장 당내 후보가 거의 없는만큼 은퇴 대신에 울산시장 4선에 도전할 수도 있다.[6]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울산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민주노동당 송철호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2005년 영호남시도지사협의회 회장에 선출되었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울산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민주노동당 노옥희 후보를 꺾고 재선되었다.
그리고 또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로 울산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민주노동당 김창현 후보를 꺾고 당선되면서 3선에 성공하였다. 이후 2012년 광역시장협의회 회장에 선출되었다.
2014년 3월 31일 상반기 재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울산광역시장직을 사임하였다. 그런데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치러진 새누리당의 울산광역시장 후보 경선에서 김기현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했다는 점, 김기현과 박맹우 간 자리 맞바꾸기라는 점 등의 비판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김기현이 울산광역시장 선거에서 당선되고 박맹우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울산광역시 남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무소속 송철호 후보를 꺾고 당선됨으로써 자리 맞바꾸기가 이루어졌다.
약 11년 10개월동안 울산광역시의 시장으로 재직한 대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울산에서 3선 시장은 처음이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박맹우를 울통령이라고 부르는 모양. 부임 이후 시에 만연하던 정경유착을 적극적으로 뿌리뽑기 위해 노력한 점, 울산 12경 지정, 울산시티투어, 고래박물관 개관, 태화강 대숲공원 조성 등을 통해 공업도시로만 알려졌던 울산의 이미지를 다양한 방향으로 개선시킨 점, 그리고 결정적으로 공업으로 인해 오염된 도시를 되살려 환경생태도시로 변화시킨 점에서 시민들에게 높게 평가받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울산의 젖줄이라고 불리는 태화강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수질오염이 매우 심각했었는데, 박맹우 시장이 취임한 후 3년만에 수영대회를 개최할 정도로 수질이 대대적으로 개선되었다. 실제로 박 시장의 시정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정치 성향이나 박맹우라는 정치인에 대한 개인적 호불호을 막론하고 여전히 호의적인 편이라고 한다.
2016년 한 해동안 새누리당의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기간에는 이철우가 자유한국당 사무총장이 되었다가 선거 이후 자유한국당 사무총장으로 재임명되었다.
전임 사무총장이었던 한선교가 건강 악화로 사무총장직을 사퇴하자 2019년 6월 28일 자유한국당 사무총장에 임명됐다. 20대 국회들어 총 3번이나 사무총장을 역임한 셈.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울산 남 을 경선에서 김기현 전 시장에 밀렸고, 페이스북에 정계 은퇴를 암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다만 차기 울산광역시장 당내 후보가 거의 없는만큼 은퇴 대신에 울산시장 4선에 도전할 수도 있다.[6]
3. 논란 [편집]
- 2016년 말에 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하여 시민들의 박근혜 탄핵 촛불 집회와 관련하여 "민심이 늘 최선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요구가 항상 최선의 답을 내놓은 건 아니었다." 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하였다.
4. 여담 [편집]
- 시장 재직 시절 관사 입주를 거부하고 삼산동의 현대아파트에 계속 거주하며 출퇴근했다. 그래서인지 울산에는 시장 공관이 없다.
5. 선거 이력 [편집]
연도 | 선거 종류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02 |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울산광역시장) | 197,772 (53.07%) | 당선 (1위) | 초선 | |
2006 |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울산광역시장) | 261,361 (63.23%) | 당선 (1위) | 재선 | |
2010 |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울산광역시장) | 279,421 (61.26%) | 당선 (1위) | 3선[7] | |
2014 |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19대 국회 울산 남구 을)[8] | 20,686 (55.81%) | 당선 (1위) | 초선 | |
2016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울산 남구 을) | 29,838 (42.97%) | 당선 (1위) | 재선 |
6. 둘러보기 [편집]
라이선스를 별도로 명시하지 않은 문서는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문서의 기여자는 역사 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접두어의 N: - 나무위키 사용자, R: - 리그베다 위키의 사용자를 뜻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나무위키에서 동일한 문서의 역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