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왕(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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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楚)나라 19대 국군
3대 왕
문왕
文王
미(羋)
웅(熊)
자(貲)
아버지
초무왕(楚武王) 웅철(熊徹), 웅통(熊通), 웅달(熊達)
어머니
등만(鄧曼)
아내
식규(息嬀)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675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690년 ~ 기원전 675년

목차
1. 개요2. 치세3. 화씨지벽의 일화4. 후일담

1. 개요 [편집]

초나라의 제19대 군주. 3대 왕. 초 무왕의 아들이며, 장오와 초성왕의 아버지. 초 무왕이 죽은 뒤 왕위를 이어 식나라, 등나라,[1] 신나라, 기나라, 채나라 등을 쳐서 강역을 넓히고 초나라를 장강 일대의 패권국이 되게 만드는 기반을 만들었다.

2. 치세 [편집]

초 무왕의 뒤를 이은 초 문왕은 즉위 초창기에 수도를 단양에서 영 땅으로 옮겼다.[2]

초 문왕 2년(기원전 688년), 초 문왕은 병사를 일으켜 신(申)나라를 치고 등(鄧)나라를 지나가는데 신하가 등기후(鄧祁侯)에게 초 문왕을 습격하자고 했으나 등 기후는 듣지 않았다. 그리고 초 문왕은 신나라를 멸했다.

초 문왕 3년(기원전 687년), 등나라를 쳤다.

초 문왕 6년(기원전 684년), 초가 채나라를 쳐서 채나라를 신땅[3]에서 이겨 채 애후를 포로로 잡았다. 그런데 오래지 않아 석방했는데, 채 애후는 식후의 아내이자 (陳)의 군주의 딸인 식규가 천하 제일의 미녀라고 소개했다. 그래서 초 문왕은 식규를 차지할 계획을 짰다.

그후 초 문왕이 식나라를 방문했는데, 식후가 그를 접대하며 환대했으나 식나라를 멸해 식규를 차지했다.[4] 식후는 그 일로 충격을 받아 병을 얻어 죽었다. 식규는 장오, 초성왕 두 아들을 남겼다.

초 문왕 10년(기원전 680년) 가을 7월, 초나라 병력이 채나라로 쳐들어갔다.

초 문왕 11년(기원전 679년), 제 환공이 패자가 될 때 초나라의 국력을 키웠다.

초 문왕 12년(기원전 678년), 등나라를 멸했다. [5]

초 문왕 15년(기원전 675년), 병사를 거느리고 파나라를 침공했으나 대패했다. 결국 영도로 귀환했는데, 육권(鬻拳)[6]이 그를 받아들이지 않고 초 문왕에게 말했다.
"황나라를 치고 오십시오."

결국 초 문왕은 황나라를 쳐서 끝내는 황나라를 제압했으나, 회군 중에 병을 얻어 그 해 6월에 죽었다. 육권은 자결하여 순장되었다.[7]

3. 화씨지벽의 일화 [편집]

초나라의 형산[8]에서 변화라는 사람이 옥의 원석을 세 차례 초왕에게 바쳤으나, 초여왕초무왕은 그 말을 믿지 않고 그에게 월형에 내렸다. 변화가 서러웠는지 눈물을 흘리며 울자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보배로운 옥의 원석을 가져왔는데, 알아보지 못하는게 원통해서 운다고 했다.

초 문왕이 그 이야기를 듣고 원석을 다듬게 하니 보배로운 옥이 나왔고, 변화의 이름을 따서 화씨지벽이 되었다고 한다. 단 리동혁의 본삼국지에 의하면 이 이야기는 정사가 아닌 야사에서 떠도는 내용이라고 한다.

열국지에 의하면 화씨지벽은 훗날 전국시대 초나라 재상이 가지고 있었다고 하며, 그것이 없어지자, 장의가 훔친 걸로 의심해 매질을 했다고 한다. 그후 화씨지벽이 조혜문왕에게 갔는데, 이 자세한 이야기는 인상여, 화씨지벽 항목 참조.

4. 후일담 [편집]

초 문왕이 죽은 뒤 식규의 소생인 장오가 즉위했으나 그는 초 성왕에게 죽임을 당했다. 초 성왕은 국력을 키워 송나라를 제압하는 등 나름대로 패권을 행사했으나 진 문공을 이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손자인 초 목왕, 증손자인 초장왕 대에 이르러서는 춘추오패가 된다.

[1] 등나라는 초왕의 장인 국가다.[2] 영은 수도이기 때문에 영도라고도 불렸는데, 이곳이 삼국지의 강릉성이다.[3] 이 신 땅은 탕이 이윤을 발견했다는 그 신(莘)과 한자가 같다.[4] 식후가 초 문왕을 환대한 이유는 바로 초나라를 이용해 채나라를 견제하기 위함이었다.[5] 참고로 초나라가 등나라의 부마국이라 별다른 요청을 안하고 길을 빌릴 수 있었다. [6] 사람의 이름에 쓰일 때 鬻은 죽이 아닌 육으로 읽는다.[7] 이 일을 두고 초나라를 까는 사람들은 초나라를 까는 레퍼토리로 쓴다. 다만 육권이란 인물을 잠시 살펴 보자면, 원래는 죽게 될 채 애후를 살리라 간언했으며, 왕이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자 칼을 뽑아 위협해 받아들이게 한 직후 왕을 협박한 죄를 들어 자기 발을 잘랐던 사람이다. 초 문왕은 육권에게 대혼(大閽) 벼슬을 내려 수도의 대문을 지키게 했고, 바로 이 대문에서 돌아온 왕을 막고 공적없이 돌아옴은 수치라 간언해 결국 왕을 객사하게 했다. 물론 순장이라는 풍습이 막장스럽기는 하지만, 육권은 왕을 몇 번이나 거슬렀던 자신을 나름 벌하는 의미에서 자결하고 순장된 것이다.[8] 이 형산에서 형주라는 지명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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