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무왕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분류
초(楚)나라 18대 국군 2대 왕 무왕 武王 | |||
미(羋) | |||
웅(熊) | |||
아버지 | 초소오(楚霄敖) 웅감(熊坎) | ||
아내 | 등만(鄧曼) | ||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690년 | |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740년 ~ 기원전 690년 | |
1. 개요 [편집]
2. 치세 [편집]
분모 17년(기원전 741년), 초 무왕은 형 분모를 시해한 뒤 초나라 군주에 올랐다. 그는 등나라 후작(鄧侯)의 딸 등만(鄧曼)을 아내로 삼았다. 그리고 투백비(鬭伯比)를 영윤으로 임명하고, 굴하(屈瑕)를 막오(莫敖)에 봉하면서, 국력이 날로 신장되어갔다. 그런데, 초나라는 자작이었기 때문에, 그 지위가 매우 낮았다. 그리하여 웅철의 승진 욕구가 샘솟았다.
주 환왕 16년이자, 초 무왕 37년(기원전 704년) 여름에 침록 부근에서 회맹을 가졌는데, 그 때 참여한 나라는 파나라, 용나라, 복나라, 등나라, 교나라, 나(羅)나라, 진(軫)나라, 신나라, 이나라, 운나라, 강나라였다. 황나라, 수나라는 오지 않았다. 초 무왕은 대부 위장을 보내 황나라를 책망했다. 막오인 굴하로 하여금 수나라를 치게 했다. 그리하여 수나라를 크게 이겼다. 패배한 수후는 달아나고 거우인 투단은 수나라에서 포로를 잡고 전리품을 얻었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웅철은 왕을 자칭하니 바로 초 무왕이다.[4]
초 무왕 41년(기원전 700년), 초군은 교나라에게 승리했고, 정립성 아래서 회맹을 가졌다.
초 무왕 42년(기원전 699년), 굴하로 하여금 나나라를 치게했는데, 패전하였다. 굴하는 패잔병을 거느리고 황곡으로 갔으나 초 무왕의 꾸지람을 듣고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 이때 변화가 화씨지벽의 원석을 바쳤다가 오른쪽 다리에 월형을 당했다.
초 무왕 51년(기원전 690년), 수나라를 정벌하는데, 한수 동쪽에 이르러 갑자기 초 무왕이 병이 들어 죽었다. 초나라의 영윤 투기와 막오 굴중은 초 무왕의 발상을 비밀에 부치고 여전히 안원에서 동진할 계획을 세웠다. 초군들이 수나라의 성 근처에 이르자 수의 군신들이 굴복하였다. 초군이 회군하자 한수를 건넌 뒤 발상하고 그 뒤를 이어 아들 웅자가 즉위하여 초문왕이 되었다.
주 환왕 16년이자, 초 무왕 37년(기원전 704년) 여름에 침록 부근에서 회맹을 가졌는데, 그 때 참여한 나라는 파나라, 용나라, 복나라, 등나라, 교나라, 나(羅)나라, 진(軫)나라, 신나라, 이나라, 운나라, 강나라였다. 황나라, 수나라는 오지 않았다. 초 무왕은 대부 위장을 보내 황나라를 책망했다. 막오인 굴하로 하여금 수나라를 치게 했다. 그리하여 수나라를 크게 이겼다. 패배한 수후는 달아나고 거우인 투단은 수나라에서 포로를 잡고 전리품을 얻었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웅철은 왕을 자칭하니 바로 초 무왕이다.[4]
초 무왕 41년(기원전 700년), 초군은 교나라에게 승리했고, 정립성 아래서 회맹을 가졌다.
초 무왕 42년(기원전 699년), 굴하로 하여금 나나라를 치게했는데, 패전하였다. 굴하는 패잔병을 거느리고 황곡으로 갔으나 초 무왕의 꾸지람을 듣고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 이때 변화가 화씨지벽의 원석을 바쳤다가 오른쪽 다리에 월형을 당했다.
초 무왕 51년(기원전 690년), 수나라를 정벌하는데, 한수 동쪽에 이르러 갑자기 초 무왕이 병이 들어 죽었다. 초나라의 영윤 투기와 막오 굴중은 초 무왕의 발상을 비밀에 부치고 여전히 안원에서 동진할 계획을 세웠다. 초군들이 수나라의 성 근처에 이르자 수의 군신들이 굴복하였다. 초군이 회군하자 한수를 건넌 뒤 발상하고 그 뒤를 이어 아들 웅자가 즉위하여 초문왕이 되었다.
[1] 청화대학(清華大學)에서 소장하고 있는 청화전국간(清華戰國簡) 내용 중에 초나라의 역사를 담은 문헌인 초거(楚居)라는 기록에는 이름이 철(徹)로 기록되어 있다.[2] 앞의 주석에서 언급했듯이 사기의 저자 사마천이 한무제의 이름이 유철이라서 피휘를 하기 위해 기록한 이름. 참고로 이름이 같은 후대 인물인 괴철도 이와 같은 경우이다.[3] 주나라 천자만이 왕을 칭한 춘추시대임을 감안하면 대담한 일이기는 하나, 초나라가 원래부터 묘족의 국가였다가, 중원에 편입된 것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 아니다.[4] 당시 강회 지방에서 수나라는 강한 편에 속했다.
라이선스를 별도로 명시하지 않은 문서는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문서의 기여자는 역사 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접두어의 N: - 나무위키 사용자, R: - 리그베다 위키의 사용자를 뜻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나무위키에서 동일한 문서의 역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