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필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1916년 경상남도 동래군(현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일본 규슈제국대학 법과를 졸업하였다.
1942년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여 일본 체신청에서 근무하였다.
8.15 광복 후 법제처 법제관을 지내면서 법전편찬에 진력하였다.
6.25 전쟁 때 군법무관에 임관되어 경상북도계엄사령부 민사부장과 제2작전사령부 법무장, 육군본부 법무차감 등을 역임하였고 이후 육군 준장으로 예편하였다.
이후 변호사를 개업하였고 건국대학교 법학과 교수가 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동래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조일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경상남도 동래군-양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공화당 중앙정책위원·중앙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9년 대한민국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어 1971년까지 역임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당 신상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에 경상남도 울산시-울주군-동래군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6촌 처남인 김원규에 밀려 탈락하였다. 이후 변호사 업무에 전념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에 경상남도 김해군-양산군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김택수에 밀려 탈락하였다.
1942년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여 일본 체신청에서 근무하였다.
8.15 광복 후 법제처 법제관을 지내면서 법전편찬에 진력하였다.
6.25 전쟁 때 군법무관에 임관되어 경상북도계엄사령부 민사부장과 제2작전사령부 법무장, 육군본부 법무차감 등을 역임하였고 이후 육군 준장으로 예편하였다.
이후 변호사를 개업하였고 건국대학교 법학과 교수가 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동래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조일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경상남도 동래군-양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공화당 중앙정책위원·중앙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9년 대한민국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어 1971년까지 역임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당 신상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에 경상남도 울산시-울주군-동래군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6촌 처남인 김원규에 밀려 탈락하였다. 이후 변호사 업무에 전념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에 경상남도 김해군-양산군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김택수에 밀려 탈락하였다.
3. 선거 이력 [편집]
연도 | 선거종류 | 소속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여부 | 비고 |
1960 | 제5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제25선거구) | 4,120표 (12.6%) | 낙선 (3위) | ||
1963 | 제6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제11지역구) | 16,931표 (44.16%) | 당선 | 초선 | |
1967 | 제7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제11지역구) | 23,672표 (51.62%) | 당선 | 재선 | |
1971 | 제8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제14지역구) | 23,396표 (48.12%) | 낙선 (2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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