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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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옛날 임금된 이는 반드시 하루에도 만 가지 정사를 보살피매 깊이 생각하고 멀리 고려했으며, 주위에 바른 선비를 두고 그들의 직언을 받아들여 부지런히 힘쓰느라 감히 멋대로 즐기며 놀지 않았습니다. 그런 다음에라야 도덕과 정치가 순수하고 아름다워져 국가를 보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전하께서는 날마다 정신 나간 이들이나 사냥꾼을 데리고 매와 사냥개를 놓아 꿩과 토끼를 잡기 위하여 산과 들로 뛰어다니는 것을 스스로 멈추지 못하고 계십니다. 『노자(老子)』는 ‘말달리며 사냥하는 일은 사람 마음을 미치게 한다.’고 하였고, 『서경(書經)』에는 ‘안으로 여색에 빠지거나 밖으로 사냥에 탐닉하는 일, 이 중에 하나만 있어도 망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로 보면 사냥이란 안으로 마음을 방탕하게 하고, 밖으로 나라를 망치는 것이니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이를 유념하여 주소서.
내가 신하된 자로 임금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아주지 못하였다. 대왕께서 놀고 즐기는 일을 그치지 않아 패망하게 될까 두려우니 이것이 내가 근심하는 것이다. 죽어서라도 꼭 임금을 깨우쳐주려 하니, 나의 뼈를 대왕이 사냥 다니시는 길 옆에 묻어라.
이후 진평왕이
결국 진평왕은 눈물을 흘리며 다시는 사냥을 안 하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1]
조선시대에 편찬된 동문선에 김후직의 상소문이 들어갔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이 상소문을 좋아한듯 하다.
[1] 이상 삼국사기 김후직 열전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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