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정(배우)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이름 | 김태정(金泰靖) |
출생 | |
사망 | |
국적 | |
데뷔 | |
1. 소개 [편집]
2. 파란만장한 생애 [편집]
1956년 6월 5일, 부산에서 국악인이었던 김칠성 선생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69년 경에 서울로 상경했는데 붕어빵 장사를 하며 가난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 1974년에 국내에 처음 수입된 이소룡 영화 정무문을 보고 감명받아 이소룡 영화를 수십번씩 돌려보며 그의 표정과 동작들을 따라하며 영화배우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러다 우연히 이소룡의 유작인 사망유희에서 이소룡을 대신해서 연기할 대역 배우를 찾는다는 광고를 보고 지원했는데, 이 당시 심사위원에게 제출할 사진을 찍을 돈조차 없어(...) 일주일간 사진관을 들락거리며 사진사를 설득한 끝에 겨우 겨우 허락을 받아 창덕궁에서 사진을 찍었다는 웃지 못할 일화가 있다고 한다.
평소 그를 눈여겨 보고 있던 이우석 사장의 도움으로 홍콩에 가서 오디션을 봤는데 이 때 심사위원들의 손에 동전을 쥐게 하고 순식간에 손에 쥔 동전을 빼앗는 묘기를 보여서 심사위원들을 놀래켰다 카더라. 아무튼 김태정은 결국 대역에 발탁되게 되고 세계에서 그에게 관심이 쏟아지게 된다.[4] 그렇게 완성된 사망유희는 영화 자체로는 상당한 괴작이었으나[5] 이소룡 대역을 했다는 그 자체만으로 그는 거의 스타로 인식되었고 쇼 브라더스사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을 정도로 성공한 배우가 되었다. 그 후로는 예명을 당룡(唐龍)이라 짓고 사망유희의 속편 사망탑에 출연하기도 했으나, 결과는 망했어요. 게다가 이소룡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마당에 활동범위도 점차 축소되고 있었고, 그는 결국 이소룡과 성룡의 대결이라는 황당한 설정의 무협영화 쌍배, 정윤희와 연기한
3. 죽음 [편집]
4. 평가 [편집]
5. 출연작 [편집]
6. 그 외 [편집]
홍콩영화에서 악역으로 자주 나온 황정리 선생과도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다고 한다. 또한 팔씨름에서 만큼은 져본적이 없다고 자부할 정도로 팔 힘이 엄청나다고.
[1] 네이버 프로필상 1943년 2월 12일생으로 기재되어 있다.[2] 유골함에는 음력 1957년 6월 5일생으로 되어있다. 이는 과거에는 호적신고를 늦게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 # 참고. 네이버 프로필상 2011년 7월 27일 기재되어 있다.[3] 장 클로드 반담의 데뷔작이다![4] 대역이 뭐가 그리 대단하냐고 주목을 하느냐는 질문은 하지 말자. 여기서 대역은 말 그대로 이소룡이라는 세계적인 대스타를 대신해서 연기하는 것이었으므로 상당히 막중한 역할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5] 김태정의 몸에 어설픈 기술로 이소룡의 얼굴을 덮어 씌우는 등. 훼손이 상당한 수준이었다.[6] 영화 취권의 제작자이기도 한 인물이다. 다소 B급 영역에 있기는 하지만 70~80년 대에는 홍콩 영화계에서 거물이었다.[7] 커트 맥키니를 지도하는 이소룡의 유령(...) 역이었다.[8] 사실 그 부분은 김태정의 잘못이라기 보단 이소룡의 네임벨류를 돈벌이로 이용하려 했던 제작자 레이몬드 쵸우의 탓이 크다.[9] 국내판 한정으로 김태정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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