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하(1896)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생애 [편집]
1896년 12월 제주도 북제주군 애월읍 하귀리(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2]#에서 태어났다.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제주도에서 서기로 2년간 일하다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호세이대학 예과를 마쳤다. 귀국하여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에 입학하여 철학과를 제2회로 졸업했다.
졸업 후 함경북도 종성중학교 교사와 대구사범학교 교장을 지냈다. 박정희가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일 때 학생과 교장으로 인연을 맺었다.[3]
해방 후 미군정에서 경상북도 학무부 학무과장에 임명되었고 서울 용산중학교와 경기사범학교[4] 교장을 거쳐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교수가 되었다.
1947년 정부 중앙물자행정처 기획국장 및 중앙청소비조합 전무이사를 역임하고, 1949년 제4대 제주도지사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도시자 부임 7개월만에 예전 사범학교 교장 시절의 공금횡령 등 혐의로 퇴임하였으며, 1950년 서울로 이주한 후 곧 6.25 전쟁이 발발하여 납북되었다.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제주도에서 서기로 2년간 일하다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호세이대학 예과를 마쳤다. 귀국하여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에 입학하여 철학과를 제2회로 졸업했다.
졸업 후 함경북도 종성중학교 교사와 대구사범학교 교장을 지냈다. 박정희가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일 때 학생과 교장으로 인연을 맺었다.[3]
해방 후 미군정에서 경상북도 학무부 학무과장에 임명되었고 서울 용산중학교와 경기사범학교[4] 교장을 거쳐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교수가 되었다.
1947년 정부 중앙물자행정처 기획국장 및 중앙청소비조합 전무이사를 역임하고, 1949년 제4대 제주도지사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도시자 부임 7개월만에 예전 사범학교 교장 시절의 공금횡령 등 혐의로 퇴임하였으며, 1950년 서울로 이주한 후 곧 6.25 전쟁이 발발하여 납북되었다.
2. 가족 관계 [편집]
부인 전인항(全仁恒)은 평안북도에서 탄광을 운영하는 대부호의 집안에서 4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숭덕학교를 거쳐 이화여자전문학교 보육과를 마쳤다. 졸업 후 영변으로 돌아가 유치원 선생과 소학교 피아노 선생으로 재직하다가 형부의 소개로 김용하와 결혼하였고, 6남1녀를 두었는데 둘째 아들은 6.25 전쟁 때 아버지 김용하와 같이 납북당했고 다섯째 아들이 전 대우그룹 회장 김우중이다.
- 장남 김태중: 대우어패럴 고문
- 차남 김윤중: 6.25전쟁 때 아버지 김용하와 같이 납북당했다.
- 육남 김성중: 델코 회장
3. 우당도서관 [편집]
대우그룹에서는 김용하의 교육 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의 호를 딴 우당도서관을 지어 제주도에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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