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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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달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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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No.87 | |
김용달 金龍達 | |
출생 | |
국적 | |
학력 | |
포지션 |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82년 MBC 청룡 창단멤버 |
소속팀 | |
지도자 | |
1. 소개 [편집]
2. 선수 경력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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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에 한국전력공사 야구단에 들어와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프로 원년인 1982년 1루수 KBO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지만, 이때는 오로지 수비율만으로 시상할 때였다.[1]
1979년에 한국전력공사 야구단에 들어와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프로 원년인 1982년 1루수 KBO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지만, 이때는 오로지 수비율만으로 시상할 때였다.[1]
3. 지도자 경력 [편집]
3.1. LG 트윈스 1기 시절 [편집]
3.2. 현대 유니콘스 시절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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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1999년 시즌이 종료된 후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광은이 감독이 되자 팀에서 쫓겨났고[2], 대광고 2년 선배인 김재박의 부름을 받아 현대 유니콘스의 1군 타격코치로 입단하였다.
이 시절 박재홍, 심정수, 박경완, 이숭용 등으로 이뤄진 훌륭한 타선을 만드는데 일조했으며, 명 타격코치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높은 출루율과 공을 끝까지 보는 타격이론을 앞세워 김무관, 박흥식, 황병일 등과 함께 프로야구의 4대 타격코치라 불렸다. 그래서 잘 나갈때는 용달매직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었다.[3]하지만 나중에는 용달차로 불린다.
2003년 시즌이 종료된 후 이광환 감독이 LG의 감독에서 물러나자 2군 감독 역할[4]을 하던 김용수와 함께 LG 감독 유력 후보로 떠올랐으나 LG의 선택은 1군 외야수비코치였던 금지어였고...
그러다 1999년 시즌이 종료된 후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광은이 감독이 되자 팀에서 쫓겨났고[2], 대광고 2년 선배인 김재박의 부름을 받아 현대 유니콘스의 1군 타격코치로 입단하였다.
이 시절 박재홍, 심정수, 박경완, 이숭용 등으로 이뤄진 훌륭한 타선을 만드는데 일조했으며, 명 타격코치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높은 출루율과 공을 끝까지 보는 타격이론을 앞세워 김무관, 박흥식, 황병일 등과 함께 프로야구의 4대 타격코치라 불렸다. 그래서 잘 나갈때는 용달매직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었다.[3]
2003년 시즌이 종료된 후 이광환 감독이 LG의 감독에서 물러나자 2군 감독 역할[4]을 하던 김용수와 함께 LG 감독 유력 후보로 떠올랐으나 LG의 선택은 1군 외야수비코치였던 금지어였고...
3.3. LG 트윈스 2기 시절 [편집]
파일:external/cfs9.tistory.com/download.blog?fhandle=YmxvZzI0NjAzMEBmczkudGlzdG9yeS5jb206L2F0dGFjaC8yLzI0MS5qcGc%3D.jpg
2006년 시즌이 종료된 후 김재박 감독과 함께 LG의 새 감독 후보에도 올랐으나, 또 다시 김재박에게 밀려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재박을 따라 LG 타격코치로 이적하였는데 이는 김시진과 현대 유니콘스의 차기 감독을 놓고 또 경쟁하였으나 김시진에게 또 밀려서 감독이 되는데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경쟁자였고, 본인보다 두 살 어렸던 김시진의 밑에서 코치 생활을 하기에 부담을 느꼈었기 때문이라는 카더라가 있다. 더군다나 LG에서 잘린 김용달을 받아준 이가 김재박이었고.
이 시기로 접어들면서 그의 코칭스킬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드러났다. 한국 코치들의 고질적인 병폐인 신을 발에 맞추지 않고 발을 신에 맞게 잡아늘이는 코칭스킬로 선수의 특성이나 신체적 조건, 멘탈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똑같은 타격폼을 천편일률적으로 가져다 붙이며 악명이 높아졌다.
그의 타격이론은 변화구가 휘기 전에 때리는 방식. 타자의 중심을 앞에다 둔다. 이게 일반적으로는 이상에 가깝지만, 문제는 이 방식으로는 슬러거가 안 나온다.[5] 장타는 타자의 무게중심을 뒤로 당겨놓고 때려야 잘 나온다. 심정수가 예외적인데, 이 선수는 일단 다른 선수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괴력의 소유자인데다, OB-두산 시절부터 이미 완성형 타자였기에 넘어가자. 게다가 심정수도 바뀐 폼에 적응하다 몸이 망가졌다.
게다가 한국야구도 21세기 이후로 점차 선진화되면서 횡으로 휘는 슬라이더보다는 종으로 떨어지는 커브나 포크에 투수들의 선호도가 몰려갔는데, 이런 구종을 공략하기 위해선 기본적인 선구안을 바탕으로 타격의 중심축을 뒷발에다 놓고 때려내는 게 효율적. 즉, 타격중심을 앞에 두려하는 김용달의 이론은 시대의 변화에 맞지 않았다.[6]
원래 그 타격폼이 맞았던 선수는 상관없겠지만 그게 아닌 선수는... 게다가 선수들과 대화도 잘 하지 않고 자기 교수법을 강요해서 기아로 이적한 김상현이 간접적으로 디스한적도 있다. 게다가 자신이 손대도 전혀 답이 없다고 디스했던 이성열은 두산에 와서 2010년에 24홈런을 터트렸고, 넥센 히어로즈로 건너가서도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박병호에게도 똑같은 폼을 강요해 박병신으로 만드는데 일조하였다. 결국 위 3명은 모두 LG를 떠난 이후 잠재력이 폭발했다. 심지어 박병호도 2012년 인터뷰에서 "한 달에 한 번, 많으면 2주에 한 번씩 제 타격폼을 타격코치님 마음대로 바꿨어요. 하도 자주 바뀌다 보니 타격폼 수정에 대한 스트레스가 말도 못하게 심했어요."라며 대놓고 김용달을 디스했다.[7]
결국 LG 시절 거포 유망주들의 육성에 실패하고 그 유망주들이 타 팀에 가서 터져버린 탓에 거품이 완전히 걷히며 평가가 급락했다. 사실 LG 출신 선수들 때문에 가려져 있지만, 그보다 전이었던 현대 시절에는 김민우에게 스위치 히터 전환 및 자신의 타격폼으로 고치기를 강요했다가 대차게 말아먹은 전력도 있다.
다만 김용달이 아주 무능력자는 아닌 것이, 이대형의 개선과 박종호, 이종열의 양손타자 전환 등이 그가 이룬 업적이다. 박용택도 은퇴후 인터뷰에서 2009년부터 타격이 급성장한 것이 김용달 코치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나마도 박종호와 이종열은 90년대에 성공한 케이스.
교타자들과는 궁합이 맞지만 풀스윙을 하는 장타자들과는 잘 맞지 않는 듯하다. 김용달의 문제점은 그가 양상문마냥 끝장나게 무능한 코치라서라기보다는[8], 시대의 변화에 무력한 것과 그런 타격 스타일을 선수에 상관없이 천편일률 적으로 강요하는 탓에 타자를 심하게 가린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퇴물
2006년 시즌이 종료된 후 김재박 감독과 함께 LG의 새 감독 후보에도 올랐으나, 또 다시 김재박에게 밀려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재박을 따라 LG 타격코치로 이적하였는데 이는 김시진과 현대 유니콘스의 차기 감독을 놓고 또 경쟁하였으나 김시진에게 또 밀려서 감독이 되는데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경쟁자였고, 본인보다 두 살 어렸던 김시진의 밑에서 코치 생활을 하기에 부담을 느꼈었기 때문이라는 카더라가 있다. 더군다나 LG에서 잘린 김용달을 받아준 이가 김재박이었고.
이 시기로 접어들면서 그의 코칭스킬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드러났다. 한국 코치들의 고질적인 병폐인 신을 발에 맞추지 않고 발을 신에 맞게 잡아늘이는 코칭스킬로 선수의 특성이나 신체적 조건, 멘탈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똑같은 타격폼을 천편일률적으로 가져다 붙이며 악명이 높아졌다.
그의 타격이론은 변화구가 휘기 전에 때리는 방식. 타자의 중심을 앞에다 둔다. 이게 일반적으로는 이상에 가깝지만, 문제는 이 방식으로는 슬러거가 안 나온다.[5] 장타는 타자의 무게중심을 뒤로 당겨놓고 때려야 잘 나온다. 심정수가 예외적인데, 이 선수는 일단 다른 선수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괴력의 소유자인데다, OB-두산 시절부터 이미 완성형 타자였기에 넘어가자. 게다가 심정수도 바뀐 폼에 적응하다 몸이 망가졌다.
게다가 한국야구도 21세기 이후로 점차 선진화되면서 횡으로 휘는 슬라이더보다는 종으로 떨어지는 커브나 포크에 투수들의 선호도가 몰려갔는데, 이런 구종을 공략하기 위해선 기본적인 선구안을 바탕으로 타격의 중심축을 뒷발에다 놓고 때려내는 게 효율적. 즉, 타격중심을 앞에 두려하는 김용달의 이론은 시대의 변화에 맞지 않았다.[6]
원래 그 타격폼이 맞았던 선수는 상관없겠지만 그게 아닌 선수는... 게다가 선수들과 대화도 잘 하지 않고 자기 교수법을 강요해서 기아로 이적한 김상현이 간접적으로 디스한적도 있다. 게다가 자신이 손대도 전혀 답이 없다고 디스했던 이성열은 두산에 와서 2010년에 24홈런을 터트렸고, 넥센 히어로즈로 건너가서도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박병호에게도 똑같은 폼을 강요해 박병신으로 만드는데 일조하였다. 결국 위 3명은 모두 LG를 떠난 이후 잠재력이 폭발했다. 심지어 박병호도 2012년 인터뷰에서 "한 달에 한 번, 많으면 2주에 한 번씩 제 타격폼을 타격코치님 마음대로 바꿨어요. 하도 자주 바뀌다 보니 타격폼 수정에 대한 스트레스가 말도 못하게 심했어요."라며 대놓고 김용달을 디스했다.[7]
결국 LG 시절 거포 유망주들의 육성에 실패하고 그 유망주들이 타 팀에 가서 터져버린 탓에 거품이 완전히 걷히며 평가가 급락했다. 사실 LG 출신 선수들 때문에 가려져 있지만, 그보다 전이었던 현대 시절에는 김민우에게 스위치 히터 전환 및 자신의 타격폼으로 고치기를 강요했다가 대차게 말아먹은 전력도 있다.
다만 김용달이 아주 무능력자는 아닌 것이, 이대형의 개선과 박종호, 이종열의 양손타자 전환 등이 그가 이룬 업적이다. 박용택도 은퇴후 인터뷰에서 2009년부터 타격이 급성장한 것이 김용달 코치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나마도 박종호와 이종열은 90년대에 성공한 케이스.
교타자들과는 궁합이 맞지만 풀스윙을 하는 장타자들과는 잘 맞지 않는 듯하다. 김용달의 문제점은 그가 양상문마냥 끝장나게 무능한 코치라서라기보다는[8], 시대의 변화에 무력한 것과 그런 타격 스타일을 선수에 상관없이 천편일률 적으로 강요하는 탓에 타자를 심하게 가린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3.4. 한화 이글스 시절 [편집]
파일:external/dimg.donga.com/46215796.8.jpg
2012년 5월 12일 한화 이글스에서 김용달 코치를 1군 타격코치로 영입했다. 한화에 오면서 최진행과 고동진을 관심있게 봤다고 했으며 그들을 중점적으로 손봤다고 했다.
김용달 코치를 영입한 이후 잠시 최진행의 성적이 크게 향상되기도 했지만, 이후 장타가 사라지면서 심각하게 부진했다. 반면 고동진은 무난한 시즌을 보냈으며, 오선진의 경우 김용달의 영입과 동시기에 맞물려서 포텐셜을 폭발시켰다.
한화에 와서 있었던 기간이 워낙 짧기도 했고(고작 4개월 반정도밖에 안 있었다.), 한화 타자들도 다소 애매한 성적을 내면서 평가가 엇갈렸다. 다만, 한화에 있는 기간 동안 오선진을 사람으로 만들어놨다는 데에는 모두들 동의.그리고 오선진은 13년 깨끗하게 망하고 군대행 2012년 시즌 후 한화 이글스에 김응용 감독이 부임하면서 사의를 표명했다.
2012년 5월 12일 한화 이글스에서 김용달 코치를 1군 타격코치로 영입했다. 한화에 오면서 최진행과 고동진을 관심있게 봤다고 했으며 그들을 중점적으로 손봤다고 했다.
김용달 코치를 영입한 이후 잠시 최진행의 성적이 크게 향상되기도 했지만, 이후 장타가 사라지면서 심각하게 부진했다. 반면 고동진은 무난한 시즌을 보냈으며, 오선진의 경우 김용달의 영입과 동시기에 맞물려서 포텐셜을 폭발시켰다.
한화에 와서 있었던 기간이 워낙 짧기도 했고(고작 4개월 반정도밖에 안 있었다.), 한화 타자들도 다소 애매한 성적을 내면서 평가가 엇갈렸다. 다만, 한화에 있는 기간 동안 오선진을 사람으로 만들어놨다는 데에는 모두들 동의.
3.5. KIA 타이거즈 시절 [편집]
3.5.1. 2013년 [편집]
3.5.2. 2014년 [편집]
3.6. 야인 시절 [편집]
2015년 KBO 육성위원으로 선임됐고 2017년과 2018년에는 대구고 타격 인스트럭터도 겸했다. 2019년에는 KBO 경기운영위원을 맡았다.
3.7. 삼성 라이온즈 시절 [편집]
3.7.1. 2020년 [편집]
2020년부터 고향팀 삼성의 1군 타격코치를 맡는다.
이런 미친 그래도 강 모씨 보단 괜찮을듯 싶었지만 강 모씨보다 심하다
NC와의 개막시리즈에서 팀타율 .138이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스윕패당하며 욕먹고 있다.
개막하고 10일이 지나고도 거의 대부분의 주전 타자들이 1할에서 빌빌 기고 있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안그래도 망한 타선을 폭망하게 만든 주범. 5월 12일 기준 팀타율이 무려 .198이다. 김동엽은 시즌 초반에 준수한 활약을 하면서 살아나나 했지만, 역시 김용달 작품답게 타구질이 악화되어 땅볼이 늘어남에 따라 장타가 실종되었고 똑딱이로 전락했다. 김동엽을 포함해서 강민호, 이성규는 배트가 공을 따라가지 못하고 연일 선풍기질을 해대며 어쩌다 공이 맞아도 내야를 벗어나는 타구가 영 나오질 않는다. 김지찬은 한 달 내내 1군을 따라다녔지만 내야타구 비율이 65%로 끔찍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애초에 2014년 이후 현장을 떠났고, 5년이 넘는 기간동안 그 어느팀도 이 인물을 찾지 않았음에도 난데없이 1군 타격코치로 모셔온 구단의 의중이 궁금할 지경이다. 아니나 다를까 5년간 왜 철저히 배척당했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현대야구와 동떨어진 타격이론 때문에 슬러거를 만들지 못하고 시도때도 없이 타격폼을 뜯어고치는 그의 코칭방식은 야인시절동안 전혀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6월 11일 기준으로 스프링캠프부터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는 김동엽, 이성규는 아직도 선풍기질과 내야뜬공의 악몽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다. 2군을 다녀온 박해민은 아직 볼넷이 단 한개이지만 그래도 몰아치기를 하면서 타율을 한껏 끌어올리고 수비와 주루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엄청나게 비교가 되고 있다. 삼성팬들은 제발 애들좀 그만 망치고 떠나라고 아우성중. 김동엽은 2군에 내려가서도 땅볼을 연신 양산하며 헤매고 있다.
미국 데이터 전문 업체 스포츠인포솔루션의 분석에 따르면 올시즌 하드타구 비율(타구속도 95마일(152km)이상)이 삼성은 KBO 9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1위는 21.7%의 LG고, 꼴찌는 15.5%의 한화이다. 이번 시즌 한화가 비정상적인 팀인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KBO 꼴찌나 다름 없는 타구질을 자랑중이다. 타율, 출루율 같은 지표들을 다 떠나서 현대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타구속도가 최하위를 기록했다는 것은 아주 엄청난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팬들은 다시 감독시절로 인해 금지어로 전락한 김한수를 외치고 있다. 김한수가 감독으로는 영 아니지만, 타격코치로서는 최고수준이기 때문. 게다가 2군에서 올라온 선수들이 전부 대폭발하며 김용달은 더 비판받고 있다.
7월 타격이 나아지며 겉으로는 짤리지 않을 명분을 획득했지만, 잘하는 선수들은 전부 2군에 있다 온 선수들이다. 게다가 이들이 1군에 머물러 김용달 코치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던 8월에는 2점라이온즈가 되어 12경기 중 7경기에서 2점득점이라는 미친 기록을 세웠다.
그야말로 역대 LG 트윈스의 타격코치 못지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거 화타로 유명하던 모습은 이제 온데간데 없다.진짜로 김한수 다시 불러와야 할 듯
===2021===
우투수보다 좌투수에 약한 김지찬똑딱이를 스위치로 전향시키고 있다
NC와의 개막시리즈에서 팀타율 .138이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스윕패당하며 욕먹고 있다.
개막하고 10일이 지나고도 거의 대부분의 주전 타자들이 1할에서 빌빌 기고 있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안그래도 망한 타선을 폭망하게 만든 주범. 5월 12일 기준 팀타율이 무려 .198이다. 김동엽은 시즌 초반에 준수한 활약을 하면서 살아나나 했지만, 역시 김용달 작품답게 타구질이 악화되어 땅볼이 늘어남에 따라 장타가 실종되었고 똑딱이로 전락했다. 김동엽을 포함해서 강민호, 이성규는 배트가 공을 따라가지 못하고 연일 선풍기질을 해대며 어쩌다 공이 맞아도 내야를 벗어나는 타구가 영 나오질 않는다. 김지찬은 한 달 내내 1군을 따라다녔지만 내야타구 비율이 65%로 끔찍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애초에 2014년 이후 현장을 떠났고, 5년이 넘는 기간동안 그 어느팀도 이 인물을 찾지 않았음에도 난데없이 1군 타격코치로 모셔온 구단의 의중이 궁금할 지경이다. 아니나 다를까 5년간 왜 철저히 배척당했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현대야구와 동떨어진 타격이론 때문에 슬러거를 만들지 못하고 시도때도 없이 타격폼을 뜯어고치는 그의 코칭방식은 야인시절동안 전혀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6월 11일 기준으로 스프링캠프부터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는 김동엽, 이성규는 아직도 선풍기질과 내야뜬공의 악몽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다. 2군을 다녀온 박해민은 아직 볼넷이 단 한개이지만 그래도 몰아치기를 하면서 타율을 한껏 끌어올리고 수비와 주루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엄청나게 비교가 되고 있다. 삼성팬들은 제발 애들좀 그만 망치고 떠나라고 아우성중. 김동엽은 2군에 내려가서도 땅볼을 연신 양산하며 헤매고 있다.
미국 데이터 전문 업체 스포츠인포솔루션의 분석에 따르면 올시즌 하드타구 비율(타구속도 95마일(152km)이상)이 삼성은 KBO 9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1위는 21.7%의 LG고, 꼴찌는 15.5%의 한화이다. 이번 시즌 한화가 비정상적인 팀인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KBO 꼴찌나 다름 없는 타구질을 자랑중이다. 타율, 출루율 같은 지표들을 다 떠나서 현대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타구속도가 최하위를 기록했다는 것은 아주 엄청난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팬들은 다시 감독시절로 인해 금지어로 전락한 김한수를 외치고 있다. 김한수가 감독으로는 영 아니지만, 타격코치로서는 최고수준이기 때문. 게다가 2군에서 올라온 선수들이 전부 대폭발하며 김용달은 더 비판받고 있다.
7월 타격이 나아지며 겉으로는 짤리지 않을 명분을 획득했지만, 잘하는 선수들은 전부 2군에 있다 온 선수들이다. 게다가 이들이 1군에 머물러 김용달 코치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던 8월에는 2점라이온즈가 되어 12경기 중 7경기에서 2점득점이라는 미친 기록을 세웠다.
그야말로 역대 LG 트윈스의 타격코치 못지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거 화타로 유명하던 모습은 이제 온데간데 없다.
===2021===
우투수보다 좌투수에 약한 김지찬
4. 연도별 주요 성적 [편집]
역대 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1982 | 68 | 168 | .315 | 53 | 10 | 0 | 5 | 23 | 29 | 2 | 19 | .464 | .381 | |
1983 | 48 | 83 | .217 | 18 | 2 | 0 | 1 | 8 | 7 | 1 | 7 | .277 | .278 | |
1984 | 57 | 94 | .298 | 28 | 5 | 4 | 1 | 14 | 9 | 1 | 15 | .468 | .395 | |
1985 | 71 | 142 | .232 | 33 | 9 | 0 | 3 | 14 | 15 | 3 | 21 | .359 | .327 | |
1986 | 24 | 43 | .209 | 9 | 0 | 0 | 1 | 4 | 3 | 0 | 8 | .279 | .333 | |
1987 | 31 | 42 | .286 | 12 | 2 | 0 | 1 | 8 | 3 | 0 | 7 | .405 | .388 | |
1988 | 14 | 18 | .000 | 0 | 0 | 0 | 0 | 0 | 0 | 0 | 2 | .000 | .100 | |
KBO 통산 (7시즌) | 313 | 590 | .259 | 153 | 28 | 4 | 12 | 71 | 66 | 7 | 79 | .381 | .345 | |
5. 여담 [편집]
- 2010년부터 IPSN에서 해설을 맡았으나, 완성된 문장을 내뱉질 못하는 참담한 수준의 해설로 많은 이들의 분노를 샀다. 야구인 출신의 해설위원 중 말주변이 없는 해설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김용달 위원의 경우는 그 정도가 좀 심했다. 그 백인천, 이광권, 김상훈에 버금간다는 평이 나올 정도.
덕택에 조용하던 IPSN 게시판이 김용달 해설위원의 퇴출을 원하는 게시물들로 도배되기도 했다게다가, LG전 중계에서는 노골적으로 LG편을 드는 편파해설을 하여 더 미움 받았다.LG와 대결중인 상대팀의 홈런에 대해 "아, 저런 홈런은 전혀 의미가 없는 홈런이에요"라며 까대기도..
- 이사만루 게임빌 시전에 슈퍼스타카드 혹은 (1982)골글이면서 스탯이 개극혐이신 덕분에 용달차니 어쩌니 하면서 대차게 까였다.
- 2012년 자신의 이름을 건 타격 이론서 '용달매직의 타격비법'을 출간했다. 이후 2015년 KBO 육성위원이 되었다.
- 권용관과 도플갱어 수준으로 닮았다. 덕분에 권용관과 부자 지간이라는 드립도 종종 있었다.
[1] 이사만루2014 KBO에서 슈퍼스타 카드가 출시될 때, 골든글러브 전적 덕분에 82 김용달 슈스도 출시되었는데, 상급 스타만도 못한 성능, 6성이라는 낮은 등급으로 나왔다. 게다가 중급선수카드나 최상급 선수카드 등에서 96 박경완과 같이 가끔씩 등장하는 의외의 흔함 때문에 이사만루 유저 한정 네타 캐릭터가 되어버렸다(...)[2] 이광은 시절에 김대진이 타격코치로 왔고, 동시에 LG 1군 타격코치 잔혹사가 시작되었다. 거의 20년째 안 깨지고 있으며, 김용달 본인도 포함되었다.[3] 특히, 박흥식&김용달은 거포인 심정수/박병호에게 타격폼을 살짝 수정해보자는 건의를 수 없이 할 정도로 쫒아다녔었다. 결과적으로 이 둘은 50홈런을 쳐냈다. 유이하게 우타자 50홈런을 가지고 있는 소유자들이다 또 다른 하나는 좌타자인 이승엽 [4] 공식적으로 03 LG는 2군 감독이 없었다. 책임코치 보직을 두었는데, 당시 책임코치가 김용수.[5] 감독은 X-존까지 설치해가며 팀의 장타를 늘리려고 했는데 정작 타격코치는 단타 위주의 코칭을 하고 있었다는게 문제인 것이다.[6] 김용달과 정반대의 코칭스킬을 갖고 있는 코치가 황병일. 타격의 중심축을 뒷발에 놓고 때려내는 방식을 주문하며 선수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7] 그 문제의 타격코치로도 서용빈, 윤덕규도 있긴하나, 당시 메인타격코치가 김용달인지라, 김용달이 유력하다.[8] 다만 양상문은 90년대 롯데에서 이룬 성과가 없지 않다. 또한 롯데 투수코치 시절(2010)도 김수완과 이재곤의 폭망으로 인해서 재평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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