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태(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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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2. 생애3. 여담

1. 개요 [편집]

대한민국 육군의 군인. 최종 계급은 중장이며, 최종 보직은 육군사관학교장이다.

2. 생애 [편집]

충청북도 청주시 출신이다. 운호중학교를 거쳐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 육군사관학교 제39기로 입교[1]하여, 1983년 졸업과 함께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이후 군수분야 요직을 모두 거치며 군수전문가로서 커리어를 쌓았다. 즉, 직능은 군수라는 이야기다.

대령시절 제5군수지원사령부 예하 제51군수지원단장을 지냈다. 준장 진급 후 육군사관학교 생도대장육군본부 군수참모부 군수기획처장을 역임했다. 소장시절, 육군 제2작전사령부 예하 제32보병사단장과 육군본부 군수참모부장을 지냈다. 중장 진급과 동시에 육군 수도군단장에 취임했고, 이후 자신이 준장시절 생도대장을 맡아 생도들의 훈육을 맡았던 육군사관학교 학교장으로 취임해 지휘·훈육권을 인수했다.

그러나 수도군단장 재직시절, 육사 한 기수 후배이지만 직속상관이었던 3군사령관의 형사처벌 요구를 무시하고 음주 사격으로 물의를 빚은 당시 제17보병사단 예하 제3경비단장 노모 중령에 대한 솜방망이 징계로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2] 이로 인하여 육사교장으로 7개월의 짧은 시간만을 근무하고 정진경 중장으로 교체되었다. 하지만 그 짧은 기간동안 신흥무관학교를 육사의 뿌리로 가져오는 등의 사업을 추진하면서 수많은 변혁을 시도했고, 정규재TV에 생도라고 주장하는 인원의 투서가 날라가는 등 그 과정에서 많은 불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3. 여담 [편집]

[1] 김용우, 제갈용준, 장재환, 이진원 장군과 육사 동기다.[2] 육사 50기인 이 사람은 당시 대령(진)이었는데, 보직해임이라는 처벌을 받았음에도 결국 대령으로 진급했다. 이후 제1야전군사령부 예하 모 군단의 정보참모로 부임하여서도 갑질을 하다 또 보직해임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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