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1906)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1906년 경상남도 합천군 용주면 손목리#에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대학 중학부를 졸업하였다.
이후 합천군에서 면장, 합천금융조합장을 역임하였다. 이 때의 경력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8.15 광복 후 우익 정치인이 되어 대한독립촉성국민회에서 활동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후보로 경상남도 합천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최창섭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대한국민당 최창섭 후보에 설욕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다시 자유당 최창섭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상남도 부산시(현 부산광역시) 동래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김인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3년 초 허정의 신정당에 몸담았다가 탈당하고 자유민주당, 국민의당에 몸담았다. 같은 해 치러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동래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양극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합천군에서 면장, 합천금융조합장을 역임하였다. 이 때의 경력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8.15 광복 후 우익 정치인이 되어 대한독립촉성국민회에서 활동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후보로 경상남도 합천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최창섭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대한국민당 최창섭 후보에 설욕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다시 자유당 최창섭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상남도 부산시(현 부산광역시) 동래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김인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3년 초 허정의 신정당에 몸담았다가 탈당하고 자유민주당, 국민의당에 몸담았다. 같은 해 치러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동래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양극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 37세 수(洙) 항렬.
라이선스를 별도로 명시하지 않은 문서는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문서의 기여자는 역사 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접두어의 N: - 나무위키 사용자, R: - 리그베다 위키의 사용자를 뜻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나무위키에서 동일한 문서의 역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